일요일, 10월 01, 2023

30년만의 대결 (1971)

30년만의 대결 (1971)


https://www.kmdb.or.kr/db/kor/detail/movie/K/02309


- 감독: 임권택
- 각본: 송장배
- 촬영: 최호진
- 출연: 최무룡 (장대규), 박노식 (황달수), 김지미 (설옥희) 



폭력적이고 불쾌한 요소들이 종종 들어있는 이 시기의 다른 최무룡 영화들에 비해 이 영화는 편안하게 볼 수 있는 로맨틱 코미디이다. 특히 옥희 생일 파티에서 달수가 부른 밴드가 연주를 시작하자 대규가 옥희에게 춤을 청하는 장면은 최고였다. 최무룡-김지미가 춤추는 장면을 다른 영화에서도 본 적이 있지만 ([마지막 정열], [동경사자와 명동호랑이]) 이 영화가 단연 제일이다. 일거에 분위기를 역전시켜버리는데 너무 태연하고 자연스럽고 우아하다. 연주 곡목은 Three coins in the fountain 인 것 같다.

대규가 풍금 연주하는 장면도 좋았다. 추억이 깃든 곡을 연주하는 대규를 옥희가 아름다운 미소를 띄고 바라보는데 거기에 또 멋진 미소로 답하는 대규 (이 때 최무룡 옆 모습이 기막히게 잘 생겼다). 안절부절못하는 달수가 딴죽을 걸어보지만 대꾸조차 안하고 씩 웃는 대규. 세 사람의 조화가 아주 멋지다. 연주하는 곡목을 알고 싶은데 아직 못 알아냈다.

달수 처가 옥희 집에 쳐들어와서 옥희 쪽은 쳐다보지도 않고 달수만 패는 것도 좋았다. 웃기기로는 달수가 대규에게 이혼을 위한 법률 상담을 하는 장면이 제일 웃겼다. 아니 그걸 왜 대규에게 상담해… 최무룡이 실제로 법대를 다녔다는 걸 알기 때문에 더 웃겼는지도. 사실 이 영화 속 최고의 커플은 대규-옥희보다도 대규-달수인데 30년만에 고향에 돌아온 옥희가 두 사람이 티격태격하는 걸 보고는 "두 분은 여전히 다정하시군요"라고 말할 정도이다. 

임 감독님 본인이 그렇게 말씀하셨다지만 이 영화가 존 포드 감독의 [The Quiet Man]의 리메이크라는 얘기는 좀 과장된 것 같다. [The Quiet Man]은 나도 무척 좋아하고 여러 번 봤는데,  두 남자가 하루 종일 싸우는 게 나오긴 하지만 전체 플롯은 전혀 다르다. [The Quiet Man]을 리메이크한다는 기분으로 만드셨을 것 같기는 하다.

무슨 심각한 주먹패 영화같이 보이는 포스터는 실제 영화와 거리가 멀다. 심의서류를 보니 맨 처음 시나리오는 독립운동부터 시작해서 대규의 죽음으로 끝나는 거였다는데 저 포스터는 그 시나리오 줄거리만 듣고 그린 거 아닌가 싶다.

오리지널 대본도 봤는데 여기에는 옥희가 대규에게 "선생님의 그 미소는 옛날 그대루예요. 달수씨의 너털웃음도 여전하시구!"라는 대사가 있어서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실제 영화에는 안 나오지만 이거 너무 최무룡/박노식 맞춤 대사다. 최무룡의 미소, 박노식의 너털웃음 저희도 좋아합니다…

 
* 판본에 관하여:
심의서류를 보면 원래 상영 시간 97분 프린트가 있었는데 지금 영상자료원 영상도서관 VOD는 82분밖에 안된다. 녹음대본과 비교했을 때 현재 영상도서관 VOD에서 볼 수 없는 부분은
- 어린 시절 에피소드
- 웅 (대규 아들)과 옥희 모녀가 길에서 첫 조우
- 목사와 두 남자의 젊은 시절 악연 (옥희 결혼)
- 팔보 이빨 에피소드 (대규 법률 지식) 
- 지향 남자친구 편지 후 지향과 옥희 장면 더 있음 (옥희의 외로움)
- 옥희가 목사에게 도망치겠다고 미리 얘기한다.
- 지향이 서울로 먼저 출발
- 결말부 액션 참가자가 더 많다 (마을 사람들) 등이다. 

영상자료원에 88년에 출시된 VHS가 있고 상영 시간이 90분이라고 되어있어서 VOD와 비교해보고 싶었지만 사실상 볼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결국 다른 경로로 VHS를 입수해서 비교를 해 봤는데 영상도서관 VOD만도 못 했다. 사실 이 얘기를 풀려면 단편 소설 한 편 분량인데 여기선 생략한다.

일요일, 6월 11, 2023

John Wayne (1907-05-26 ~ 1979-06-11)

 44년 전 오늘, 듀크가 세상을 떠났다.




금요일, 5월 26, 2023

John Wayne (1907-05-26 ~ 1979-06-11)

 116년 전 오늘 듀크가 태어났다.



일요일, 4월 23, 2023

속눈섭이 긴 여자 (1970)

속눈섭이 긴 여자 (1970)

https://www.kmdb.or.kr/db/kor/detail/movie/K/02245

- 감독: 임권택
- 각본: 곽일로
- 촬영: 이문백
- 출연: 문희 (숙진), 최무룡 (동진), 이낙훈 (박형사), 윤양하 (남규), 남미리 (미아), 장혁 (용).  


전체적인 이야기는 [레베카]를 연상시키고 "토요일 오후 3시 37분"이라는 자막과 함께 호텔 침대 위의 남녀를 보여주며 시작하는 오프닝은 영락없이 [사이코] 다. 남편이 자신을 생명보험에 가입시키고 죽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아내의 모습은 [의혹]. 00:19:00쯤 임권택 감독이 카메오로 등장하기까지 한다. 여러가지로 히치콕 영화들 생각이 날 수 밖에 없는데, 히치콕만큼 변태스럽지는 않고 더 가볍게 볼 수 있다.

어쨌든 상당히 재미있게 봤다. 다만 디테일이 좀 아쉬운 곳들이 있는데 좀 손 봐서 리메이크해도 괜찮을 것 같다. 한 가지 문제라면 요즘 배우들 중에 최무룡이 연기한 캐릭터를 할 만한 배우가 생각나질 않는다. 여기서 최무룡은 매력적이고 어딘가 비밀을 감추고 있는 남자를 연기하는데 정말 기막히게 매혹적이다. [주차장] (1969)의 최무룡이 섹시했다면 이 영화의 최무룡은 매혹적이라는 말이 더 잘 맞는다. 특히 댄스홀에서 문희와 우연히 마주치고 미소 짓는 모습은 마술적으로 느껴질 정도다 (00:16:50 부근). 우린 이 순간 하나만으로도 이 영화를 사랑한다.

초반은 흥미진진하고 빠르게 진행되는데 우리가 최무룡 팬이라 그런지는 몰라도 숙진이 동진에게 순식간에 매혹되는 건 아주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동진이 양장점에서 일하는 숙진을 찾아와서 처음 만나는 장면에서 느껴지는 첫 만남의 긴장과 끌림도 좋았다. 동진과 숙진의 섹스 장면은 반 강제로 시작되는 것도 그렇고 그 자체는 좀 괴로웠는데 그 직전에 동진이 문을 닫고 나갈 것인지 뒤돌아설 것인지 조마조마한 긴장감은 좋았다.

반면에 숙진이 동진을 의심하기 시작하는 대목의 묘사는 너무 짧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영시간이 90분인데 조금 더 길었어도 좋았을 것 같다. 결말이 다가오면서 너무 많은 것을 대사로 길게 설명하고 맥이 빠지는 게 큰 흠이다. "말많은 악당"이 한참 떠들다가 자기도 지쳤는지 동료에게 나머지 설명하라고 넘기는 대목에서는 웃음이 날 정도였다. 그리고 저 시절 한국 영화 속 남자들 여자 뺨 때리는 저 악습은 대체. 악당이 때려도 괴로운데 저 시절 영화들은 심지어 남자 주인공이 사랑하는 여자를 때린다.

70년대 초 컬러 한국영화들에서 플래시 백을 흑백으로 하는 경우를 여럿 보았고 이 영화도 그런데, 문희와 최무룡의 투 샷 대화 장면들이 문희의 회상 속에서는 문희의 시점, 즉 최무룡의 단독 샷으로 나오는 게 흥미로웠다.

일요일, 3월 19, 2023

주차장 (1969)

주차장 (1969)
https://www.kmdb.or.kr/db/kor/detail/movie/K/01938
- 감독: 김수용
- 각본: 나소원
- 촬영: 홍동혁
- 출연: 윤정희 (문정음), 최무룡 (한동규), 이낙훈 (기자 A), 홍성우 (기자 C), 정민 (동규의 장인)


[1]
아마도 최무룡-윤정희의 첫 공연작. 현실과 환상의 경계가 모호하게 그려지는데 우리는 여성 심리물로 받아들이고 꽤 재미있게 봤다. "영화TV예술" 69년 4월호에 시나리오가 실려있는데 거기는 문 선생의 환상의 시작과 끝이 비교적 명확하게 표시되어 있지만 그게 그렇게 중요한 것 같지는 않다.

영화는 초반에 문 선생이 교통사고를 당한 뒤에 오프닝 크레딧이 나오는데, 이 뒤는 전부 그녀의 몽상이고 한동규는 실재하지도 않는 인물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여주인공 이름이 계속 문 선생이라고만 나오다가 거의 결말에 가서 정미라고 하는데 좀 있다가는 정음이라고 한다 (시나리오 상에는 정음이다. 정미는 우리가 잘못 들은 건지도 모르겠다). 한동규의 자동차 번호는 분명히 2799였고 심지어 굳이 기자 C 입을 빌어서 9땡 운운하는 대사까지 나왔는데 한동규가 키 잃어버린 뒤에 나오는 번호는 2692라고 한다. 이게 컨티뉴이티 에러일 수도 있겠지만 영화 분위기가 묘해서 문 선생의 현실과 환상이 뒤섞인 것이거니하고 관대하게 보게 된다.

문 선생은 서른 살 넘은 평범한 가정주부로서 자신이 아무 쓸모도 매력도 없는 존재로 여겨지는 걸 두려워했던 게 아닐지. 동규 집에 형사가 찾아오기 직전 장면에서 그게 적나라하게 나오는데 이 장면에서는 동규도 문선생도 다른 장면과는 상당히 다른 분위기다.

[2]
최무룡은 입을 열었다 하면 뭔 x소리야 싶은 소리만 하는 출판사 문화 부장 한동규 역인데 그 x소리들을 너무 경쾌하게 하는 섹시한 쾌락주의자 캐릭터다. 사무실에서 기자 A의 부인에게서 걸려온 전화 처리하는 솜씨도 일급이었다. 샤워 장면 직전에 아연했는데 "샤워할 수 있지?"라는 대사를 너무 태연하게 잘 해서였다. 샤워 장면도 그렇고 시나리오만큼 노골적인 장면은 없는데 하여간 이 영화의 최무룡은 정말 섹시하다.

[3]
<아카이브 프리즘> #4 봄호, '인터뷰 이슈'에 실린 김수용 감독 인터뷰 중에서 이 영화에 대한 언급이 잠깐 나온다 (259-260쪽). 아시아 영화제 출품용으로 시간에 맞추느라고 급하게 만들었고 조금 더 시간이 있었으면 좋았을 거라고 아쉬워하는데, 최무룡의 연기에 대해 감정 처리가 정확하다는 표현을 한다 ("최무룡 씨가 연기 잘하죠? (…) 최무룡 씨만큼 감정 처리가 정확하고, (…) 그이는 참 연기의 산신령이에요. 그런 분이었어요. 난, 이 최무룡 씨가 아쉬워요. 굉장히 연기 잘하는 사람이에요."). 이순재 배우가 했던 말과 일맥상통한다.

[4]
https://www.kmdb.or.kr/db/kor/detail/movie/K/01938/own/videoData
에 따르면 현재 남아있는 듀프네거티브 흑백, 릴리스 프린트 흑백이라고 되어 있는데, 당시 광고에서는 총천연색이라고 하고 심의서류에도 칼라라고 되어 있다. 어찌된 일인지. 지금 영상도서관 VOD는 흑백이다. 이 영화 분위기에는 흑백이 더 어울리긴 한다.

[5]
제작사가 극동인데 한동규가 자동차 세워놓는 목재상 이름이 극동목재상. 최무룡이 낚시광으로 유명했는데 낚시 장면이 나와서 좀 웃었다. 사실 최무룡이 언제부터 낚시를 취미로 했는지는 모르겠는데 시나리오에는 낚시가 아니라 사냥 장면으로 되어 있다. 남녀 주인공이 함께 쓰는 우산에 그려진 그림이 [One Hundred and One Dalmatians] (1961)인 건 무슨 조화인지. 저 영화 우리나라에서 개봉은 했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