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11월 26, 2023

[잔혹하게 죽여라] vs [잔혹한 청춘]




[1]

1960년대 초에 김지헌 작가가 쓴 [잔혹하게 죽여라]라는 제목의 시나리오가 있었다. 우리가 본 가장 오래된 기록은 최무룡이 삭발하고 출연한다는 소식이 실린 잡지 [국제영화] 1960년 10월호 94쪽 기사이다. 이 때는 이강원 감독이 연출할 예정이었다 (같은 잡지 118쪽).

 (https://www.kmdb.or.kr/history/magazine/2927)


[2]

그리곤 1년 넘게 소식이 없다가 [국제영화] 1962년 2월호에 다시 소식이 실렸다. 감독이 전홍식 감독으로 바뀌었다. 제법 제작이 진행되고 있던 것처럼 기사를 써놓았고, 사진과 줄거리를 보면 상당히 흥미로웠다. 제작사 新銳프로덕슌도 나름 젊은 피들이 모여서 신선한 작품을 만들고자 하는 곳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https://www.kmdb.or.kr/history/magazine/2745)

- pdf 8 (잡지 쪽번호 불명): 스태프, 캐스트, 줄거리 소개 + 사진

- pdf 23-24 (59-60쪽). 전홍식 감독 소개 -일본 대학교육, 동보 기획부 근무 경험. 新銳프로덕슌으로 [젊은 표정], [정열없는 살인], 이성구, 이강원, 김지헌과 작업. [특등신부와 삼등신랑]. 아시아영화제 출품을 노리는 [잔혹하게 죽여라]

- pdf 28 (69쪽) "아시아영화제 출품을 노리는 작품들 / 잔혹하게 죽여라 | 이 극영화 『殘醒하게 죽여라』도 『바람부는 時節』(假題)과 마찬가지로 상업적인 것을 배제하고 있다. 그러니까 지금까지의 우리나라 영화가 연출기교, 음악 등에서 우리나라 관객에게 비교적 타협을 해왔으나 일체 이런 것을 지향하고 전편적으로 작품본위의 연출과 촬영수법을 쓰고 있다고 한다. 이 작품은 한 자본주의 국가의 특징인 완천한 계급적 사회가 아직 우리나라에는 없고 다만 계층으로 되어있는 형편인데 이러한 것을 이 작품의 의욕을 충분히 살려, 외국적인 것 을 한국적인 것으로 전도(轉到)하되 지금까지의 방화 내용을 벗어나 차원을 높이자는 것이다. 이 『殘醒하게 죽여라』는 흔히 「스릴러 ·액션」으로 일반에서는 생각하나 실상은 「메로드라마」로서, 여섯명의 등장인물이 모두 서로 얽혀있는데 유능하나 악덕스런 현사회인은 스스로 구멍을 파서 스스로 자멸의 길로 빠지고 만다는 줄거리이다. 제작에는 전국영배의 安炳夏씨이며, 연출은 신예 全洪植감독이 담당하였고 『구름은 흘러도』 『젊은 表情』을 쓴 김지헌씨가 九개월이나 걸려 탈고한 「오리지날 ·씨나리오」에 金剛潤씨가 윤색을 했다. 촬영에 洪東械, 미술에 洪性七 그리고 음악에 朴棒石씨등 우리나라 중견의 「스탶」이 망라되었고、「캐스트로는 金振奎, 崔浦鉉, 최무룡, 김희갑, 金지미, 조미령, 尹一峰 제씨에 신인 白燦一 그리고 楊薰씨가 특별출연을 하고있는 야심작이다."

- pdf 35 (83쪽) 머리에 커다란 가위를 대고 있는 최무룡의 사진. 

- pdf 42 (96쪽) "로케이션 현장 : 잔혹하게 죽여라 - 마포강변에 밤이 지새다 : 겨울 바람이 쌀쌀히 양쪽뺨에 스치는 어느날밤 기자는 ...  全洪植 감독의 감독 전향 제2회 작품인 『殘離하게 죽여라』의 촬영현장인 麻浦로 달렸다. 마침「크랑크 ·인」 하던 날이라 빈 손으로 갈 수가 없어 사과 한 궤짝과 오리온 카라멜 등을 사가지고 가보니 셑장이 판자의 목재 치장(木材 置場)이었다. 휘황찬란한 「라이트」밑에 최무룡, 최남현 등이 그야말로 긴장한 가운데 연기를 하고 있다. 그도 그럴것이 이 작품에서 한국의 연기파들이 한군데 모여 연기 대결(對決)을 하는 것이다. 그날의 촬영 「스케줄」은 없었지마는 金振奎、趙美령, 문정숙 등이 최무룡, 최남현과 공연을 하는데 그야말로 볼만한 ’경연'을 하는 참이다. 全洪植감독은 평상시와 같이 멋진 작업복을 입고 짤막한 키에 재빠른 동작으로 레디고를 부르고 있는 품이 아마도 五十 컽은 우난히 해치울 것 같다. 日本에서 대학을 나온 「인테리 」감독은 東寶의 기획부에서 전통 있는 제작시스템의 촬영방식을 체득한 유일무이한 제작을 아는 감독이다. 日人들이 말하기를 『젠상 고국에 가거든 좋은 것을 만기시오』 하면서 격려하던 그말을 머리에 색여두면서 올봄의 아세아영화제에 그들이 오면 자랑삼아 출품할 작품이라니 얼마만한 야심작인지 짐작이 간다. 더욱이 『殘醒하게 죽여라』의 제착을 全國映配에서 하고 있으니 제작비의 조달이 염려 없어 全洪植 감독은 연출 「이메지」에만 치중한다니 가이 작품의 우수성은 짐작이 간다. 더구나 씨나리오로는 양심적인 작가 김지헌이 一년넘어를 가다듬어온 중견 작가로서의 문제작에다가 「베테란」 김강윤 씨가 깔끔히 손을 봐 윤색(潤色)을 했으니 얼마나 때가 벗었는지 알수 있다. 쌀쌀한 날씨에 촬영쾌조를 빌고 촬영기사 홍동혁 씨에게 실력발휘를 부탁하고 스냅 한장을 찍고 도라왔다."

- pdf 51 (115쪽) 신영화 소개 / 줄거리와 스틸 한 장. 

- pdf 84 (181쪽) 방화제작진행일람표: 30% 진행

* 조선일보 1961년 11월 29일자 4면, 1961년 12월 07일자 4면에도 [잔혹하게 죽여라]가 촬영을 시작했다는 기사가 있다.

 

[3] 

[국제영화] 1962년 3월호부터는 [잔혹한 청춘] 이라는 제목으로 불렸다. 전재 시나리오를 읽으니 최무룡 팬으로서 흥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서른 네살의 최무룡에게 이런 섹시한 개새끼 역이라니. 순진하고 천사처럼 아름다운 여주인공 역할에 스물 두살의 김지미도 더할 나위 없이 어울렸을 것이다.

(https://www.kmdb.or.kr/history/magazine/2746)

- pdf 64-73 (143쪽 - 160쪽) [잔혹한 청춘] (잔혹하게 죽여라) 시나리오 전재

- pdf 95 (205쪽) ... 방화제작진행일람표: [잔혹한 청춘] 30% 진행

* 조선일보 1962년 02월 20일자 4면에 [잔혹하게 죽여라]가 [잔혹한 청춘]으로 제목이 바뀌었다는 기사가 있다.


[4] 

그런데 [국제영화] 1962년 5월호에는 [잔혹한 청춘]이 촬영에 들어가지도 않았다는 말이 나오는가 하면 제작이 60% 진행되었다는 앞뒤가 안 맞는 보도도 있다. 인제 슬슬 예감이 안 좋다.

(https://www.kmdb.or.kr/history/magazine/2747)

- pdf 42 (95쪽) "홍콩행 보류진정  | 다시 말해서 상당한 과작 영화사로 알려져있는 『狂鳳』을 제작중인 某社, 『어딘지 가고싶어』를 제작중인 ×사, 『殘離한 청춘』을 만드는 사 등이 공동으로 崔군의 도향(獲香) 보류진정을 어느 기관에 했다는 설(說)이다. 떠나기전에 초조하고 야릇한 심경 가운데 있던 崔군은 萬年筆論子를  붙들고  『이런 억울할데가 있오. 나는 권력이 횡행턴 林×× 때에도 이런일을 당한적이 없오. 이건 나의 인권의 침해요』 하면서 울분을 토하는가 하면 『狂風』은 趙肯夏 감독 자신이 다른 일을 하려고 약속 중에 있으면서 六개월 동안에 생각나면 촬영을 하는 정도이고 『어딘지 가고싶어』는 빨리 쫑이 되어야겠지만 그 간에 홍 감독이 부도수표 사건 내지는 진행비가 없어 많이 놀았으나 내가 가면 곧 옵니다. 『잔혹한 청준』은 제작비가 없어 촬영에 들어가지도 안 했는데 내가 전속이 아닌바에야 국내서 촬영커나 해외 로케를  떠나거나 무슨 차이점이 있읍니까? 우리 영화계가 서로 무릎을 맞대이고 흉금을 털어놓고 상의 할 수 있는 때에 비로소 발전이 있을겝니다.』"

- pdf 97 (205쪽) 방화제작 진보 일람표: [잔혹한 청춘] 60% 


[5]

이후로는 여러 잡지 맨 뒤에 실리는 영화제작현황표에서나 [잔혹한 청춘] 소식을 간간이 볼 수 있는데 도무지 앞뒤가 맞지 않는다. 62년 10월 말에 최무룡-김지미 스캔들이 터졌는데 그것도 악영향을 미쳤을 것 같다. 

[국제영화] 1962년 6월호 - 50%

[국제영화] 1962년 10월호 - 60%

[국제영화] 1962년 11월호 - 20%

[국제영화] 1962년 12월호 - 영화제작현황표에서 사라짐 

[씨네마] 1962년 12월호 - 60%

[씨네마] 1963년 1월호 - 30%

[씨네마] 1963년 2월호 - 20%

[영화세계] 1963년 6월호 (https://www.kmdb.or.kr/history/magazine/3207), pdf 14 (50쪽) : 대종영화사에서 진행한다는 언급 


[6] 

그 뒤로 6년 동안 아무 소식도 안 보이다가 1969년에야 다시 진행한다는 기사가 보인다. 이마저도 한 잡지 내에서 기사마다 제작사 이름이 다르다 (한국 vs 태창). 감독은 윤성환 감독으로, 주연은 신영균으로 바뀌었다.

[국제영화] 1969년 3월호 

(https://www.kmdb.or.kr/history/magazine/3164)

pdf 33 (64쪽), pdf 34 (66쪽)


[7]

그리하여 최종적으로 덕영필림 제작의 [잔혹한 청춘] (1969) 이 나왔다 (https://www.kmdb.or.kr/db/kor/detail/movie/K/02036). 지금은 필름이 유실되어 볼 수 없는 영화다. 다만 KMDb에서 볼 수 있는 스틸 사진과 영상도서관에서 볼 수 있는 심의대본으로 짐작해 보건데 처음 시나리오와는 엄청난 차이가 있는 것 같다. 무엇보다, 잔혹한 결말이 해피엔딩으로 바뀌어 버렸다. 배우도 아쉽다. 60년대 초의 최무룡과 김지미라면 정말 잘 어울렸을 역할인데. 신영균은 훌륭한 배우지만 69년이면 이 역할을 하기엔 너무 나이가 많고 김지미를 대신해 여주인공을 맡은 신인 배우는 시나리오 속 이미지와 전혀 맞질 않는다. 원래 기획대로 62년에 완성되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8] 

https://www.interview365.com/news/articleView.html?idxno=86903 처럼 간혹 [잔혹한 청춘]이 최무룡 주연으로 완성된 것 처럼 써놓은 글들이 있는데 이는 잘못된 것입니다....

 

토요일, 11월 11, 2023

최무룡 (1928-02-25 (음) ~ 1999-11-11)

 24년 전 오늘, 최무룡이 세상을 떠났다.



일요일, 10월 01, 2023

명동삼국지 (1971)

명동삼국지 (1971)


https://www.kmdb.or.kr/db/kor/detail/movie/K/02468

- 감독: 임권택
- 각본: 나한봉
- 촬영: 서정민
- 출연: 장동휘 (조인태), 김지미 (유청자), 최무룡 (강동열)




[스포일러 있음]

사운드가 유실된 영화고 영상도서관 VOD에는 자막이 달려 있다. 주역부터 단역까지 전부 암흑가 악당이라는 게 아주 마음에 든다. 이런 장르에 한 둘은 스쳐지나갈 법한 형사나 의사, 간호사조차 안 나온다. 이 시기 액션영화는 대개 항일물이거나 반공물의 요소가 들어있는데 그것도 전혀 없다. 

전쟁 영화 제외하고 지금까지 본 옛날 한국 영화 중 총이 가장 많이 나온다. 기관총까지 나온다. 도입부에 1947년이라고 자막이 나오고 명동을 배경으로 한다고는 하는데 사실은 시대 불명 국적 불명이다. 절대로! 70년대 초 현재의 대한민국은 아닙니다! 라고 면피용으로 저 자막을 넣은 거 아닐까. 

김만호 회장 빈소에 모여드는 암흑가 거물들의 모습은 시대 불명 국적 불명의 절정이고 거의 코미디처럼 느껴졌다. 예전 홍콩 느와르가 생각났는데 물론 이 영화는 그보다 한참 전에 나왔다. 

최무룡이 출연한 70년대 초 액션 영화 중 제일 재미있다. 운전수 바꿔치기 트릭이 남발되고 (세 번인가 네 번 나온다) 저길 어떻게 알고 왔지 싶은 상황이 너무 많은 게 흠이지만. 주요 파벌이 넷인데 (김웅, 독고성, 황해, 박암) 독고성 일파는 비교적 일찍 일소되니 삼국지라고 봐주도록 하자. 영어 제목이 [Whirl of Betrayals on Myeongdong]이라는데 누가 붙였고 어디에 기록된 사항인지 궁금하다. 영어 제목이 더 정확한 것 같다. 처음부터 끝까지 배신의 연속이라 (조직 간은 물론이고 조직 내에서도 배신한다) 뒤통수가 얼얼해서 동열과 인태가 지하실에 얘기할 때 습격한 무리가 어느 일파에서 온 무리들인지 지금도 모르겠다. 

강동열도 배신을 밥 먹듯 하는데 영화 속에서 그가 배신하지 않은 단 두 사람 인태와 청자. 그런데 청자는 결국 그를 죽이니 서로를 끝까지 위한 건 동열과 인태뿐. 둘이 나누는 대화도 이런 식이다. "왜 날 도와주지?" "시시한 정이 들었다고 해 두지" / "왜 내게 이걸 말해주지?" "나도 모르겠다". 

악당들만 나와서 배신에 배신이 이어지는 기본 골격이 마음에 들어서 21세기에 리메이크해보는 것도 괜찮겠다 싶다. 결말은 동열이 신나서 차 몰고 가다가 교통사고로 죽는 것으로 하면 어떤지.

크레딧 순서가 장동휘 - 김지미 - 최무룡인데 실제 극중 비중은 최무룡 - 장동휘 - 김지미 순이다. 최무룡이 연기하는 강동열이 단연 주인공이고, 뻔뻔하고 재미있는 악당이다.

김지미가 연기하는 청자는 동열과 잘 어울리는 뻔뻔하고 재치있는 인물로 등장하지만 구두 한짝 떨어뜨리고 도망칠 때부터 캐릭터가 망가진다. 영화를 마무리짓는 청자의 복수도 너무 갑작스러운데, 모두들 욕망에 따라 움직이고 다 죽어버리는 오리지널 시나리오의 결말이 더 마음에 든다.



 

30년만의 대결 (1971)

30년만의 대결 (1971)


https://www.kmdb.or.kr/db/kor/detail/movie/K/02309


- 감독: 임권택
- 각본: 송장배
- 촬영: 최호진
- 출연: 최무룡 (장대규), 박노식 (황달수), 김지미 (설옥희) 



폭력적이고 불쾌한 요소들이 종종 들어있는 이 시기의 다른 최무룡 영화들에 비해 이 영화는 편안하게 볼 수 있는 로맨틱 코미디이다. 특히 옥희 생일 파티에서 달수가 부른 밴드가 연주를 시작하자 대규가 옥희에게 춤을 청하는 장면은 최고였다. 최무룡-김지미가 춤추는 장면을 다른 영화에서도 본 적이 있지만 ([마지막 정열], [동경사자와 명동호랑이]) 이 영화가 단연 제일이다. 일거에 분위기를 역전시켜버리는데 너무 태연하고 자연스럽고 우아하다. 연주 곡목은 Three coins in the fountain 인 것 같다.

대규가 풍금 연주하는 장면도 좋았다. 추억이 깃든 곡을 연주하는 대규를 옥희가 아름다운 미소를 띄고 바라보는데 거기에 또 멋진 미소로 답하는 대규 (이 때 최무룡 옆 모습이 기막히게 잘 생겼다). 안절부절못하는 달수가 딴죽을 걸어보지만 대꾸조차 안하고 씩 웃는 대규. 세 사람의 조화가 아주 멋지다. 연주하는 곡목을 알고 싶은데 아직 못 알아냈다.

달수 처가 옥희 집에 쳐들어와서 옥희 쪽은 쳐다보지도 않고 달수만 패는 것도 좋았다. 웃기기로는 달수가 대규에게 이혼을 위한 법률 상담을 하는 장면이 제일 웃겼다. 아니 그걸 왜 대규에게 상담해… 최무룡이 실제로 법대를 다녔다는 걸 알기 때문에 더 웃겼는지도. 사실 이 영화 속 최고의 커플은 대규-옥희보다도 대규-달수인데 30년만에 고향에 돌아온 옥희가 두 사람이 티격태격하는 걸 보고는 "두 분은 여전히 다정하시군요"라고 말할 정도이다. 

임 감독님 본인이 그렇게 말씀하셨다지만 이 영화가 존 포드 감독의 [The Quiet Man]의 리메이크라는 얘기는 좀 과장된 것 같다. [The Quiet Man]은 나도 무척 좋아하고 여러 번 봤는데,  두 남자가 하루 종일 싸우는 게 나오긴 하지만 전체 플롯은 전혀 다르다. [The Quiet Man]을 리메이크한다는 기분으로 만드셨을 것 같기는 하다.

무슨 심각한 주먹패 영화같이 보이는 포스터는 실제 영화와 거리가 멀다. 심의서류를 보니 맨 처음 시나리오는 독립운동부터 시작해서 대규의 죽음으로 끝나는 거였다는데 저 포스터는 그 시나리오 줄거리만 듣고 그린 거 아닌가 싶다.

오리지널 대본도 봤는데 여기에는 옥희가 대규에게 "선생님의 그 미소는 옛날 그대루예요. 달수씨의 너털웃음도 여전하시구!"라는 대사가 있어서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실제 영화에는 안 나오지만 이거 너무 최무룡/박노식 맞춤 대사다. 최무룡의 미소, 박노식의 너털웃음 저희도 좋아합니다…

 
* 판본에 관하여:
심의서류를 보면 원래 상영 시간 97분 프린트가 있었는데 지금 영상자료원 영상도서관 VOD는 82분밖에 안된다. 녹음대본과 비교했을 때 현재 영상도서관 VOD에서 볼 수 없는 부분은
- 어린 시절 에피소드
- 웅 (대규 아들)과 옥희 모녀가 길에서 첫 조우
- 목사와 두 남자의 젊은 시절 악연 (옥희 결혼)
- 팔보 이빨 에피소드 (대규 법률 지식) 
- 지향 남자친구 편지 후 지향과 옥희 장면 더 있음 (옥희의 외로움)
- 옥희가 목사에게 도망치겠다고 미리 얘기한다.
- 지향이 서울로 먼저 출발
- 결말부 액션 참가자가 더 많다 (마을 사람들) 등이다. 

영상자료원에 88년에 출시된 VHS가 있고 상영 시간이 90분이라고 되어있어서 VOD와 비교해보고 싶었지만 사실상 볼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결국 다른 경로로 VHS를 입수해서 비교를 해 봤는데 영상도서관 VOD만도 못 했다. 사실 이 얘기를 풀려면 단편 소설 한 편 분량인데 여기선 생략한다.

일요일, 6월 11, 2023

John Wayne (1907-05-26 ~ 1979-06-11)

 44년 전 오늘, 듀크가 세상을 떠났다.




금요일, 5월 26, 2023

John Wayne (1907-05-26 ~ 1979-06-11)

 116년 전 오늘 듀크가 태어났다.



일요일, 4월 23, 2023

속눈섭이 긴 여자 (1970)

속눈섭이 긴 여자 (1970)

https://www.kmdb.or.kr/db/kor/detail/movie/K/02245

- 감독: 임권택
- 각본: 곽일로
- 촬영: 이문백
- 출연: 문희 (숙진), 최무룡 (동진), 이낙훈 (박형사), 윤양하 (남규), 남미리 (미아), 장혁 (용).  


전체적인 이야기는 [레베카]를 연상시키고 "토요일 오후 3시 37분"이라는 자막과 함께 호텔 침대 위의 남녀를 보여주며 시작하는 오프닝은 영락없이 [사이코] 다. 남편이 자신을 생명보험에 가입시키고 죽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아내의 모습은 [의혹]. 00:19:00쯤 임권택 감독이 카메오로 등장하기까지 한다. 여러가지로 히치콕 영화들 생각이 날 수 밖에 없는데, 히치콕만큼 변태스럽지는 않고 더 가볍게 볼 수 있다.

어쨌든 상당히 재미있게 봤다. 다만 디테일이 좀 아쉬운 곳들이 있는데 좀 손 봐서 리메이크해도 괜찮을 것 같다. 한 가지 문제라면 요즘 배우들 중에 최무룡이 연기한 캐릭터를 할 만한 배우가 생각나질 않는다. 여기서 최무룡은 매력적이고 어딘가 비밀을 감추고 있는 남자를 연기하는데 정말 기막히게 매혹적이다. [주차장] (1969)의 최무룡이 섹시했다면 이 영화의 최무룡은 매혹적이라는 말이 더 잘 맞는다. 특히 댄스홀에서 문희와 우연히 마주치고 미소 짓는 모습은 마술적으로 느껴질 정도다 (00:16:50 부근). 우린 이 순간 하나만으로도 이 영화를 사랑한다.

초반은 흥미진진하고 빠르게 진행되는데 우리가 최무룡 팬이라 그런지는 몰라도 숙진이 동진에게 순식간에 매혹되는 건 아주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동진이 양장점에서 일하는 숙진을 찾아와서 처음 만나는 장면에서 느껴지는 첫 만남의 긴장과 끌림도 좋았다. 동진과 숙진의 섹스 장면은 반 강제로 시작되는 것도 그렇고 그 자체는 좀 괴로웠는데 그 직전에 동진이 문을 닫고 나갈 것인지 뒤돌아설 것인지 조마조마한 긴장감은 좋았다.

반면에 숙진이 동진을 의심하기 시작하는 대목의 묘사는 너무 짧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영시간이 90분인데 조금 더 길었어도 좋았을 것 같다. 결말이 다가오면서 너무 많은 것을 대사로 길게 설명하고 맥이 빠지는 게 큰 흠이다. "말많은 악당"이 한참 떠들다가 자기도 지쳤는지 동료에게 나머지 설명하라고 넘기는 대목에서는 웃음이 날 정도였다. 그리고 저 시절 한국 영화 속 남자들 여자 뺨 때리는 저 악습은 대체. 악당이 때려도 괴로운데 저 시절 영화들은 심지어 남자 주인공이 사랑하는 여자를 때린다.

70년대 초 컬러 한국영화들에서 플래시 백을 흑백으로 하는 경우를 여럿 보았고 이 영화도 그런데, 문희와 최무룡의 투 샷 대화 장면들이 문희의 회상 속에서는 문희의 시점, 즉 최무룡의 단독 샷으로 나오는 게 흥미로웠다.

일요일, 3월 19, 2023

주차장 (1969)

주차장 (1969)
https://www.kmdb.or.kr/db/kor/detail/movie/K/01938
- 감독: 김수용
- 각본: 나소원
- 촬영: 홍동혁
- 출연: 윤정희 (문정음), 최무룡 (한동규), 이낙훈 (기자 A), 홍성우 (기자 C), 정민 (동규의 장인)


[1]
아마도 최무룡-윤정희의 첫 공연작. 현실과 환상의 경계가 모호하게 그려지는데 우리는 여성 심리물로 받아들이고 꽤 재미있게 봤다. "영화TV예술" 69년 4월호에 시나리오가 실려있는데 거기는 문 선생의 환상의 시작과 끝이 비교적 명확하게 표시되어 있지만 그게 그렇게 중요한 것 같지는 않다.

영화는 초반에 문 선생이 교통사고를 당한 뒤에 오프닝 크레딧이 나오는데, 이 뒤는 전부 그녀의 몽상이고 한동규는 실재하지도 않는 인물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여주인공 이름이 계속 문 선생이라고만 나오다가 거의 결말에 가서 정미라고 하는데 좀 있다가는 정음이라고 한다 (시나리오 상에는 정음이다. 정미는 우리가 잘못 들은 건지도 모르겠다). 한동규의 자동차 번호는 분명히 2799였고 심지어 굳이 기자 C 입을 빌어서 9땡 운운하는 대사까지 나왔는데 한동규가 키 잃어버린 뒤에 나오는 번호는 2692라고 한다. 이게 컨티뉴이티 에러일 수도 있겠지만 영화 분위기가 묘해서 문 선생의 현실과 환상이 뒤섞인 것이거니하고 관대하게 보게 된다.

문 선생은 서른 살 넘은 평범한 가정주부로서 자신이 아무 쓸모도 매력도 없는 존재로 여겨지는 걸 두려워했던 게 아닐지. 동규 집에 형사가 찾아오기 직전 장면에서 그게 적나라하게 나오는데 이 장면에서는 동규도 문선생도 다른 장면과는 상당히 다른 분위기다.

[2]
최무룡은 입을 열었다 하면 뭔 x소리야 싶은 소리만 하는 출판사 문화 부장 한동규 역인데 그 x소리들을 너무 경쾌하게 하는 섹시한 쾌락주의자 캐릭터다. 사무실에서 기자 A의 부인에게서 걸려온 전화 처리하는 솜씨도 일급이었다. 샤워 장면 직전에 아연했는데 "샤워할 수 있지?"라는 대사를 너무 태연하게 잘 해서였다. 샤워 장면도 그렇고 시나리오만큼 노골적인 장면은 없는데 하여간 이 영화의 최무룡은 정말 섹시하다.

[3]
<아카이브 프리즘> #4 봄호, '인터뷰 이슈'에 실린 김수용 감독 인터뷰 중에서 이 영화에 대한 언급이 잠깐 나온다 (259-260쪽). 아시아 영화제 출품용으로 시간에 맞추느라고 급하게 만들었고 조금 더 시간이 있었으면 좋았을 거라고 아쉬워하는데, 최무룡의 연기에 대해 감정 처리가 정확하다는 표현을 한다 ("최무룡 씨가 연기 잘하죠? (…) 최무룡 씨만큼 감정 처리가 정확하고, (…) 그이는 참 연기의 산신령이에요. 그런 분이었어요. 난, 이 최무룡 씨가 아쉬워요. 굉장히 연기 잘하는 사람이에요."). 이순재 배우가 했던 말과 일맥상통한다.

[4]
https://www.kmdb.or.kr/db/kor/detail/movie/K/01938/own/videoData
에 따르면 현재 남아있는 듀프네거티브 흑백, 릴리스 프린트 흑백이라고 되어 있는데, 당시 광고에서는 총천연색이라고 하고 심의서류에도 칼라라고 되어 있다. 어찌된 일인지. 지금 영상도서관 VOD는 흑백이다. 이 영화 분위기에는 흑백이 더 어울리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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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사가 극동인데 한동규가 자동차 세워놓는 목재상 이름이 극동목재상. 최무룡이 낚시광으로 유명했는데 낚시 장면이 나와서 좀 웃었다. 사실 최무룡이 언제부터 낚시를 취미로 했는지는 모르겠는데 시나리오에는 낚시가 아니라 사냥 장면으로 되어 있다. 남녀 주인공이 함께 쓰는 우산에 그려진 그림이 [One Hundred and One Dalmatians] (1961)인 건 무슨 조화인지. 저 영화 우리나라에서 개봉은 했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