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10월 01, 2023

명동삼국지 (1971)

명동삼국지 (1971)


https://www.kmdb.or.kr/db/kor/detail/movie/K/02468

- 감독: 임권택
- 각본: 나한봉
- 촬영: 서정민
- 출연: 장동휘 (조인태), 김지미 (유청자), 최무룡 (강동열)




[스포일러 있음]

사운드가 유실된 영화고 영상도서관 VOD에는 자막이 달려 있다. 주역부터 단역까지 전부 암흑가 악당이라는 게 아주 마음에 든다. 이런 장르에 한 둘은 스쳐지나갈 법한 형사나 의사, 간호사조차 안 나온다. 이 시기 액션영화는 대개 항일물이거나 반공물의 요소가 들어있는데 그것도 전혀 없다. 

전쟁 영화 제외하고 지금까지 본 옛날 한국 영화 중 총이 가장 많이 나온다. 기관총까지 나온다. 도입부에 1947년이라고 자막이 나오고 명동을 배경으로 한다고는 하는데 사실은 시대 불명 국적 불명이다. 절대로! 70년대 초 현재의 대한민국은 아닙니다! 라고 면피용으로 저 자막을 넣은 거 아닐까. 

김만호 회장 빈소에 모여드는 암흑가 거물들의 모습은 시대 불명 국적 불명의 절정이고 거의 코미디처럼 느껴졌다. 예전 홍콩 느와르가 생각났는데 물론 이 영화는 그보다 한참 전에 나왔다. 

최무룡이 출연한 70년대 초 액션 영화 중 제일 재미있다. 운전수 바꿔치기 트릭이 남발되고 (세 번인가 네 번 나온다) 저길 어떻게 알고 왔지 싶은 상황이 너무 많은 게 흠이지만. 주요 파벌이 넷인데 (김웅, 독고성, 황해, 박암) 독고성 일파는 비교적 일찍 일소되니 삼국지라고 봐주도록 하자. 영어 제목이 [Whirl of Betrayals on Myeongdong]이라는데 누가 붙였고 어디에 기록된 사항인지 궁금하다. 영어 제목이 더 정확한 것 같다. 처음부터 끝까지 배신의 연속이라 (조직 간은 물론이고 조직 내에서도 배신한다) 뒤통수가 얼얼해서 동열과 인태가 지하실에 얘기할 때 습격한 무리가 어느 일파에서 온 무리들인지 지금도 모르겠다. 

강동열도 배신을 밥 먹듯 하는데 영화 속에서 그가 배신하지 않은 단 두 사람 인태와 청자. 그런데 청자는 결국 그를 죽이니 서로를 끝까지 위한 건 동열과 인태뿐. 둘이 나누는 대화도 이런 식이다. "왜 날 도와주지?" "시시한 정이 들었다고 해 두지" / "왜 내게 이걸 말해주지?" "나도 모르겠다". 

악당들만 나와서 배신에 배신이 이어지는 기본 골격이 마음에 들어서 21세기에 리메이크해보는 것도 괜찮겠다 싶다. 결말은 동열이 신나서 차 몰고 가다가 교통사고로 죽는 것으로 하면 어떤지.

크레딧 순서가 장동휘 - 김지미 - 최무룡인데 실제 극중 비중은 최무룡 - 장동휘 - 김지미 순이다. 최무룡이 연기하는 강동열이 단연 주인공이고, 뻔뻔하고 재미있는 악당이다.

김지미가 연기하는 청자는 동열과 잘 어울리는 뻔뻔하고 재치있는 인물로 등장하지만 구두 한짝 떨어뜨리고 도망칠 때부터 캐릭터가 망가진다. 영화를 마무리짓는 청자의 복수도 너무 갑작스러운데, 모두들 욕망에 따라 움직이고 다 죽어버리는 오리지널 시나리오의 결말이 더 마음에 든다.



 

30년만의 대결 (1971)

30년만의 대결 (1971)


https://www.kmdb.or.kr/db/kor/detail/movie/K/02309


- 감독: 임권택
- 각본: 송장배
- 촬영: 최호진
- 출연: 최무룡 (장대규), 박노식 (황달수), 김지미 (설옥희) 



폭력적이고 불쾌한 요소들이 종종 들어있는 이 시기의 다른 최무룡 영화들에 비해 이 영화는 편안하게 볼 수 있는 로맨틱 코미디이다. 특히 옥희 생일 파티에서 달수가 부른 밴드가 연주를 시작하자 대규가 옥희에게 춤을 청하는 장면은 최고였다. 최무룡-김지미가 춤추는 장면을 다른 영화에서도 본 적이 있지만 ([마지막 정열], [동경사자와 명동호랑이]) 이 영화가 단연 제일이다. 일거에 분위기를 역전시켜버리는데 너무 태연하고 자연스럽고 우아하다. 연주 곡목은 Three coins in the fountain 인 것 같다.

대규가 풍금 연주하는 장면도 좋았다. 추억이 깃든 곡을 연주하는 대규를 옥희가 아름다운 미소를 띄고 바라보는데 거기에 또 멋진 미소로 답하는 대규 (이 때 최무룡 옆 모습이 기막히게 잘 생겼다). 안절부절못하는 달수가 딴죽을 걸어보지만 대꾸조차 안하고 씩 웃는 대규. 세 사람의 조화가 아주 멋지다. 연주하는 곡목을 알고 싶은데 아직 못 알아냈다.

달수 처가 옥희 집에 쳐들어와서 옥희 쪽은 쳐다보지도 않고 달수만 패는 것도 좋았다. 웃기기로는 달수가 대규에게 이혼을 위한 법률 상담을 하는 장면이 제일 웃겼다. 아니 그걸 왜 대규에게 상담해… 최무룡이 실제로 법대를 다녔다는 걸 알기 때문에 더 웃겼는지도. 사실 이 영화 속 최고의 커플은 대규-옥희보다도 대규-달수인데 30년만에 고향에 돌아온 옥희가 두 사람이 티격태격하는 걸 보고는 "두 분은 여전히 다정하시군요"라고 말할 정도이다. 

임 감독님 본인이 그렇게 말씀하셨다지만 이 영화가 존 포드 감독의 [The Quiet Man]의 리메이크라는 얘기는 좀 과장된 것 같다. [The Quiet Man]은 나도 무척 좋아하고 여러 번 봤는데,  두 남자가 하루 종일 싸우는 게 나오긴 하지만 전체 플롯은 전혀 다르다. [The Quiet Man]을 리메이크한다는 기분으로 만드셨을 것 같기는 하다.

무슨 심각한 주먹패 영화같이 보이는 포스터는 실제 영화와 거리가 멀다. 심의서류를 보니 맨 처음 시나리오는 독립운동부터 시작해서 대규의 죽음으로 끝나는 거였다는데 저 포스터는 그 시나리오 줄거리만 듣고 그린 거 아닌가 싶다.

오리지널 대본도 봤는데 여기에는 옥희가 대규에게 "선생님의 그 미소는 옛날 그대루예요. 달수씨의 너털웃음도 여전하시구!"라는 대사가 있어서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실제 영화에는 안 나오지만 이거 너무 최무룡/박노식 맞춤 대사다. 최무룡의 미소, 박노식의 너털웃음 저희도 좋아합니다…

 
* 판본에 관하여:
심의서류를 보면 원래 상영 시간 97분 프린트가 있었는데 지금 영상자료원 영상도서관 VOD는 82분밖에 안된다. 녹음대본과 비교했을 때 현재 영상도서관 VOD에서 볼 수 없는 부분은
- 어린 시절 에피소드
- 웅 (대규 아들)과 옥희 모녀가 길에서 첫 조우
- 목사와 두 남자의 젊은 시절 악연 (옥희 결혼)
- 팔보 이빨 에피소드 (대규 법률 지식) 
- 지향 남자친구 편지 후 지향과 옥희 장면 더 있음 (옥희의 외로움)
- 옥희가 목사에게 도망치겠다고 미리 얘기한다.
- 지향이 서울로 먼저 출발
- 결말부 액션 참가자가 더 많다 (마을 사람들) 등이다. 

영상자료원에 88년에 출시된 VHS가 있고 상영 시간이 90분이라고 되어있어서 VOD와 비교해보고 싶었지만 사실상 볼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결국 다른 경로로 VHS를 입수해서 비교를 해 봤는데 영상도서관 VOD만도 못 했다. 사실 이 얘기를 풀려면 단편 소설 한 편 분량인데 여기선 생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