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일, 4월 03, 2024
일요일, 11월 26, 2023
[잔혹하게 죽여라] vs [잔혹한 청춘]
[1]
1960년대 초에 김지헌 작가가 쓴 [잔혹하게 죽여라]라는 제목의 시나리오가 있었다. 우리가 본 가장 오래된 기록은 최무룡이 삭발하고 출연한다는 소식이 실린 잡지 [국제영화] 1960년 10월호 94쪽 기사이다. 이 때는 이강원 감독이 연출할 예정이었다 (같은 잡지 118쪽).
(https://www.kmdb.or.kr/history/magazine/2927)
[2]
그리곤 1년 넘게 소식이 없다가 [국제영화] 1962년 2월호에 다시 소식이 실렸다. 감독이 전홍식 감독으로 바뀌었다. 제법 제작이 진행되고 있던 것처럼 기사를 써놓았고, 사진과 줄거리를 보면 상당히 흥미로웠다. 제작사 新銳프로덕슌도 나름 젊은 피들이 모여서 신선한 작품을 만들고자 하는 곳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https://www.kmdb.or.kr/history/magazine/2745)
- pdf 8 (잡지 쪽번호 불명): 스태프, 캐스트, 줄거리 소개 + 사진
- pdf 23-24 (59-60쪽). 전홍식 감독 소개 -일본 대학교육, 동보 기획부 근무 경험. 新銳프로덕슌으로 [젊은 표정], [정열없는 살인], 이성구, 이강원, 김지헌과 작업. [특등신부와 삼등신랑]. 아시아영화제 출품을 노리는 [잔혹하게 죽여라]
- pdf 28 (69쪽) "아시아영화제 출품을 노리는 작품들 / 잔혹하게 죽여라 | 이 극영화 『殘醒하게 죽여라』도 『바람부는 時節』(假題)과 마찬가지로 상업적인 것을 배제하고 있다. 그러니까 지금까지의 우리나라 영화가 연출기교, 음악 등에서 우리나라 관객에게 비교적 타협을 해왔으나 일체 이런 것을 지향하고 전편적으로 작품본위의 연출과 촬영수법을 쓰고 있다고 한다. 이 작품은 한 자본주의 국가의 특징인 완천한 계급적 사회가 아직 우리나라에는 없고 다만 계층으로 되어있는 형편인데 이러한 것을 이 작품의 의욕을 충분히 살려, 외국적인 것 을 한국적인 것으로 전도(轉到)하되 지금까지의 방화 내용을 벗어나 차원을 높이자는 것이다. 이 『殘醒하게 죽여라』는 흔히 「스릴러 ·액션」으로 일반에서는 생각하나 실상은 「메로드라마」로서, 여섯명의 등장인물이 모두 서로 얽혀있는데 유능하나 악덕스런 현사회인은 스스로 구멍을 파서 스스로 자멸의 길로 빠지고 만다는 줄거리이다. 제작에는 전국영배의 安炳夏씨이며, 연출은 신예 全洪植감독이 담당하였고 『구름은 흘러도』 『젊은 表情』을 쓴 김지헌씨가 九개월이나 걸려 탈고한 「오리지날 ·씨나리오」에 金剛潤씨가 윤색을 했다. 촬영에 洪東械, 미술에 洪性七 그리고 음악에 朴棒石씨등 우리나라 중견의 「스탶」이 망라되었고、「캐스트로는 金振奎, 崔浦鉉, 최무룡, 김희갑, 金지미, 조미령, 尹一峰 제씨에 신인 白燦一 그리고 楊薰씨가 특별출연을 하고있는 야심작이다."
- pdf 35 (83쪽) 머리에 커다란 가위를 대고 있는 최무룡의 사진.
- pdf 42 (96쪽) "로케이션 현장 : 잔혹하게 죽여라 - 마포강변에 밤이 지새다 : 겨울 바람이 쌀쌀히 양쪽뺨에 스치는 어느날밤 기자는 ... 全洪植 감독의 감독 전향 제2회 작품인 『殘離하게 죽여라』의 촬영현장인 麻浦로 달렸다. 마침「크랑크 ·인」 하던 날이라 빈 손으로 갈 수가 없어 사과 한 궤짝과 오리온 카라멜 등을 사가지고 가보니 셑장이 판자의 목재 치장(木材 置場)이었다. 휘황찬란한 「라이트」밑에 최무룡, 최남현 등이 그야말로 긴장한 가운데 연기를 하고 있다. 그도 그럴것이 이 작품에서 한국의 연기파들이 한군데 모여 연기 대결(對決)을 하는 것이다. 그날의 촬영 「스케줄」은 없었지마는 金振奎、趙美령, 문정숙 등이 최무룡, 최남현과 공연을 하는데 그야말로 볼만한 ’경연'을 하는 참이다. 全洪植감독은 평상시와 같이 멋진 작업복을 입고 짤막한 키에 재빠른 동작으로 레디고를 부르고 있는 품이 아마도 五十 컽은 우난히 해치울 것 같다. 日本에서 대학을 나온 「인테리 」감독은 東寶의 기획부에서 전통 있는 제작시스템의 촬영방식을 체득한 유일무이한 제작을 아는 감독이다. 日人들이 말하기를 『젠상 고국에 가거든 좋은 것을 만기시오』 하면서 격려하던 그말을 머리에 색여두면서 올봄의 아세아영화제에 그들이 오면 자랑삼아 출품할 작품이라니 얼마만한 야심작인지 짐작이 간다. 더욱이 『殘醒하게 죽여라』의 제착을 全國映配에서 하고 있으니 제작비의 조달이 염려 없어 全洪植 감독은 연출 「이메지」에만 치중한다니 가이 작품의 우수성은 짐작이 간다. 더구나 씨나리오로는 양심적인 작가 김지헌이 一년넘어를 가다듬어온 중견 작가로서의 문제작에다가 「베테란」 김강윤 씨가 깔끔히 손을 봐 윤색(潤色)을 했으니 얼마나 때가 벗었는지 알수 있다. 쌀쌀한 날씨에 촬영쾌조를 빌고 촬영기사 홍동혁 씨에게 실력발휘를 부탁하고 스냅 한장을 찍고 도라왔다."
- pdf 51 (115쪽) 신영화 소개 / 줄거리와 스틸 한 장.
- pdf 84 (181쪽) 방화제작진행일람표: 30% 진행
* 조선일보 1961년 11월 29일자 4면, 1961년 12월 07일자 4면에도 [잔혹하게 죽여라]가 촬영을 시작했다는 기사가 있다.
[3]
[국제영화] 1962년 3월호부터는 [잔혹한 청춘] 이라는 제목으로 불렸다. 전재 시나리오를 읽으니 최무룡 팬으로서 흥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서른 네살의 최무룡에게 이런 섹시한 개새끼 역이라니. 순진하고 천사처럼 아름다운 여주인공 역할에 스물 두살의 김지미도 더할 나위 없이 어울렸을 것이다.
(https://www.kmdb.or.kr/history/magazine/2746)
- pdf 64-73 (143쪽 - 160쪽) [잔혹한 청춘] (잔혹하게 죽여라) 시나리오 전재
- pdf 95 (205쪽) ... 방화제작진행일람표: [잔혹한 청춘] 30% 진행
* 조선일보 1962년 02월 20일자 4면에 [잔혹하게 죽여라]가 [잔혹한 청춘]으로 제목이 바뀌었다는 기사가 있다.
[4]
그런데 [국제영화] 1962년 5월호에는 [잔혹한 청춘]이 촬영에 들어가지도 않았다는 말이 나오는가 하면 제작이 60% 진행되었다는 앞뒤가 안 맞는 보도도 있다. 인제 슬슬 예감이 안 좋다.
(https://www.kmdb.or.kr/history/magazine/2747)
- pdf 42 (95쪽) "홍콩행 보류진정 | 다시 말해서 상당한 과작 영화사로 알려져있는 『狂鳳』을 제작중인 某社, 『어딘지 가고싶어』를 제작중인 ×사, 『殘離한 청춘』을 만드는 사 등이 공동으로 崔군의 도향(獲香) 보류진정을 어느 기관에 했다는 설(說)이다. 떠나기전에 초조하고 야릇한 심경 가운데 있던 崔군은 萬年筆論子를 붙들고 『이런 억울할데가 있오. 나는 권력이 횡행턴 林×× 때에도 이런일을 당한적이 없오. 이건 나의 인권의 침해요』 하면서 울분을 토하는가 하면 『狂風』은 趙肯夏 감독 자신이 다른 일을 하려고 약속 중에 있으면서 六개월 동안에 생각나면 촬영을 하는 정도이고 『어딘지 가고싶어』는 빨리 쫑이 되어야겠지만 그 간에 홍 감독이 부도수표 사건 내지는 진행비가 없어 많이 놀았으나 내가 가면 곧 옵니다. 『잔혹한 청준』은 제작비가 없어 촬영에 들어가지도 안 했는데 내가 전속이 아닌바에야 국내서 촬영커나 해외 로케를 떠나거나 무슨 차이점이 있읍니까? 우리 영화계가 서로 무릎을 맞대이고 흉금을 털어놓고 상의 할 수 있는 때에 비로소 발전이 있을겝니다.』"
- pdf 97 (205쪽) 방화제작 진보 일람표: [잔혹한 청춘] 60%
[5]
이후로는 여러 잡지 맨 뒤에 실리는 영화제작현황표에서나 [잔혹한 청춘] 소식을 간간이 볼 수 있는데 도무지 앞뒤가 맞지 않는다. 62년 10월 말에 최무룡-김지미 스캔들이 터졌는데 그것도 악영향을 미쳤을 것 같다.
[국제영화] 1962년 6월호 - 50%
[국제영화] 1962년 10월호 - 60%
[국제영화] 1962년 11월호 - 20%
[국제영화] 1962년 12월호 - 영화제작현황표에서 사라짐
[씨네마] 1962년 12월호 - 60%
[씨네마] 1963년 1월호 - 30%
[씨네마] 1963년 2월호 - 20%
[영화세계] 1963년 6월호 (https://www.kmdb.or.kr/history/magazine/3207), pdf 14 (50쪽) : 대종영화사에서 진행한다는 언급
[6]
그 뒤로 6년 동안 아무 소식도 안 보이다가 1969년에야 다시 진행한다는 기사가 보인다. 이마저도 한 잡지 내에서 기사마다 제작사 이름이 다르다 (한국 vs 태창). 감독은 윤성환 감독으로, 주연은 신영균으로 바뀌었다.
[국제영화] 1969년 3월호
(https://www.kmdb.or.kr/history/magazine/3164)
pdf 33 (64쪽), pdf 34 (66쪽)
[7]
그리하여 최종적으로 덕영필림 제작의 [잔혹한 청춘] (1969) 이 나왔다 (https://www.kmdb.or.kr/db/kor/detail/movie/K/02036). 지금은 필름이 유실되어 볼 수 없는 영화다. 다만 KMDb에서 볼 수 있는 스틸 사진과 영상도서관에서 볼 수 있는 심의대본으로 짐작해 보건데 처음 시나리오와는 엄청난 차이가 있는 것 같다. 무엇보다, 잔혹한 결말이 해피엔딩으로 바뀌어 버렸다. 배우도 아쉽다. 60년대 초의 최무룡과 김지미라면 정말 잘 어울렸을 역할인데. 신영균은 훌륭한 배우지만 69년이면 이 역할을 하기엔 너무 나이가 많고 김지미를 대신해 여주인공을 맡은 신인 배우는 시나리오 속 이미지와 전혀 맞질 않는다. 원래 기획대로 62년에 완성되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8]
https://www.interview365.com/news/articleView.html?idxno=86903 처럼 간혹 [잔혹한 청춘]이 최무룡 주연으로 완성된 것 처럼 써놓은 글들이 있는데 이는 잘못된 것입니다....
토요일, 11월 11, 2023
일요일, 10월 01, 2023
명동삼국지 (1971)
명동삼국지 (1971)
https://www.kmdb.or.kr/db/kor/detail/movie/K/02468
- 감독: 임권택
- 각본: 나한봉
- 촬영: 서정민
- 출연: 장동휘 (조인태), 김지미 (유청자), 최무룡 (강동열)
[스포일러 있음]
30년만의 대결 (1971)
30년만의 대결 (1971)
https://www.kmdb.or.kr/db/kor/detail/movie/K/02309
- 감독: 임권택
- 각본: 송장배
- 촬영: 최호진
- 출연: 최무룡 (장대규), 박노식 (황달수), 김지미 (설옥희)
일요일, 6월 11, 2023
금요일, 5월 26, 2023
일요일, 4월 23, 2023
속눈섭이 긴 여자 (1970)
속눈섭이 긴 여자 (1970)
https://www.kmdb.or.kr/db/kor/detail/movie/K/02245
- 감독: 임권택
- 각본: 곽일로
- 촬영: 이문백
- 출연: 문희 (숙진), 최무룡 (동진), 이낙훈 (박형사), 윤양하 (남규), 남미리 (미아), 장혁 (용).
전체적인 이야기는 [레베카]를 연상시키고 "토요일 오후 3시 37분"이라는 자막과 함께 호텔 침대 위의 남녀를 보여주며 시작하는 오프닝은 영락없이 [사이코] 다. 남편이 자신을 생명보험에 가입시키고 죽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아내의 모습은 [의혹]. 00:19:00쯤 임권택 감독이 카메오로 등장하기까지 한다. 여러가지로 히치콕 영화들 생각이 날 수 밖에 없는데, 히치콕만큼 변태스럽지는 않고 더 가볍게 볼 수 있다.
어쨌든 상당히 재미있게 봤다. 다만 디테일이 좀 아쉬운 곳들이 있는데 좀 손 봐서 리메이크해도 괜찮을 것 같다. 한 가지 문제라면 요즘 배우들 중에 최무룡이 연기한 캐릭터를 할 만한 배우가 생각나질 않는다. 여기서 최무룡은 매력적이고 어딘가 비밀을 감추고 있는 남자를 연기하는데 정말 기막히게 매혹적이다. [주차장] (1969)의 최무룡이 섹시했다면 이 영화의 최무룡은 매혹적이라는 말이 더 잘 맞는다. 특히 댄스홀에서 문희와 우연히 마주치고 미소 짓는 모습은 마술적으로 느껴질 정도다 (00:16:50 부근). 우린 이 순간 하나만으로도 이 영화를 사랑한다.초반은 흥미진진하고 빠르게 진행되는데 우리가 최무룡 팬이라 그런지는 몰라도 숙진이 동진에게 순식간에 매혹되는 건 아주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동진이 양장점에서 일하는 숙진을 찾아와서 처음 만나는 장면에서 느껴지는 첫 만남의 긴장과 끌림도 좋았다. 동진과 숙진의 섹스 장면은 반 강제로 시작되는 것도 그렇고 그 자체는 좀 괴로웠는데 그 직전에 동진이 문을 닫고 나갈 것인지 뒤돌아설 것인지 조마조마한 긴장감은 좋았다.
반면에 숙진이 동진을 의심하기 시작하는 대목의 묘사는 너무 짧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영시간이 90분인데 조금 더 길었어도 좋았을 것 같다. 결말이 다가오면서 너무 많은 것을 대사로 길게 설명하고 맥이 빠지는 게 큰 흠이다. "말많은 악당"이 한참 떠들다가 자기도 지쳤는지 동료에게 나머지 설명하라고 넘기는 대목에서는 웃음이 날 정도였다. 그리고 저 시절 한국 영화 속 남자들 여자 뺨 때리는 저 악습은 대체. 악당이 때려도 괴로운데 저 시절 영화들은 심지어 남자 주인공이 사랑하는 여자를 때린다.
70년대 초 컬러 한국영화들에서 플래시 백을 흑백으로 하는 경우를 여럿 보았고 이 영화도 그런데, 문희와 최무룡의 투 샷 대화 장면들이 문희의 회상 속에서는 문희의 시점, 즉 최무룡의 단독 샷으로 나오는 게 흥미로웠다.
일요일, 3월 19, 2023
주차장 (1969)
https://www.kmdb.or.kr/db/kor/detail/movie/K/01938
- 감독: 김수용
- 각본: 나소원
- 촬영: 홍동혁
- 출연: 윤정희 (문정음), 최무룡 (한동규), 이낙훈 (기자 A), 홍성우 (기자 C), 정민 (동규의 장인)
아마도 최무룡-윤정희의 첫 공연작. 현실과 환상의 경계가 모호하게 그려지는데 우리는 여성 심리물로 받아들이고 꽤 재미있게 봤다. "영화TV예술" 69년 4월호에 시나리오가 실려있는데 거기는 문 선생의 환상의 시작과 끝이 비교적 명확하게 표시되어 있지만 그게 그렇게 중요한 것 같지는 않다.
영화는 초반에 문 선생이 교통사고를 당한 뒤에 오프닝 크레딧이 나오는데, 이 뒤는 전부 그녀의 몽상이고 한동규는 실재하지도 않는 인물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여주인공 이름이 계속 문 선생이라고만 나오다가 거의 결말에 가서 정미라고 하는데 좀 있다가는 정음이라고 한다 (시나리오 상에는 정음이다. 정미는 우리가 잘못 들은 건지도 모르겠다). 한동규의 자동차 번호는 분명히 2799였고 심지어 굳이 기자 C 입을 빌어서 9땡 운운하는 대사까지 나왔는데 한동규가 키 잃어버린 뒤에 나오는 번호는 2692라고 한다. 이게 컨티뉴이티 에러일 수도 있겠지만 영화 분위기가 묘해서 문 선생의 현실과 환상이 뒤섞인 것이거니하고 관대하게 보게 된다.
문 선생은 서른 살 넘은 평범한 가정주부로서 자신이 아무 쓸모도 매력도 없는 존재로 여겨지는 걸 두려워했던 게 아닐지. 동규 집에 형사가 찾아오기 직전 장면에서 그게 적나라하게 나오는데 이 장면에서는 동규도 문선생도 다른 장면과는 상당히 다른 분위기다.
[2]
최무룡은 입을 열었다 하면 뭔 x소리야 싶은 소리만 하는 출판사 문화 부장 한동규 역인데 그 x소리들을 너무 경쾌하게 하는 섹시한 쾌락주의자 캐릭터다. 사무실에서 기자 A의 부인에게서 걸려온 전화 처리하는 솜씨도 일급이었다. 샤워 장면 직전에 아연했는데 "샤워할 수 있지?"라는 대사를 너무 태연하게 잘 해서였다. 샤워 장면도 그렇고 시나리오만큼 노골적인 장면은 없는데 하여간 이 영화의 최무룡은 정말 섹시하다.
[3]
<아카이브 프리즘> #4 봄호, '인터뷰 이슈'에 실린 김수용 감독 인터뷰 중에서 이 영화에 대한 언급이 잠깐 나온다 (259-260쪽). 아시아 영화제 출품용으로 시간에 맞추느라고 급하게 만들었고 조금 더 시간이 있었으면 좋았을 거라고 아쉬워하는데, 최무룡의 연기에 대해 감정 처리가 정확하다는 표현을 한다 ("최무룡 씨가 연기 잘하죠? (…) 최무룡 씨만큼 감정 처리가 정확하고, (…) 그이는 참 연기의 산신령이에요. 그런 분이었어요. 난, 이 최무룡 씨가 아쉬워요. 굉장히 연기 잘하는 사람이에요."). 이순재 배우가 했던 말과 일맥상통한다.
[4]
https://www.kmdb.or.kr/db/kor/detail/movie/K/01938/own/videoData
에 따르면 현재 남아있는 듀프네거티브 흑백, 릴리스 프린트 흑백이라고 되어 있는데, 당시 광고에서는 총천연색이라고 하고 심의서류에도 칼라라고 되어 있다. 어찌된 일인지. 지금 영상도서관 VOD는 흑백이다. 이 영화 분위기에는 흑백이 더 어울리긴 한다.
[5]
제작사가 극동인데 한동규가 자동차 세워놓는 목재상 이름이 극동목재상. 최무룡이 낚시광으로 유명했는데 낚시 장면이 나와서 좀 웃었다. 사실 최무룡이 언제부터 낚시를 취미로 했는지는 모르겠는데 시나리오에는 낚시가 아니라 사냥 장면으로 되어 있다. 남녀 주인공이 함께 쓰는 우산에 그려진 그림이 [One Hundred and One Dalmatians] (1961)인 건 무슨 조화인지. 저 영화 우리나라에서 개봉은 했었나.
금요일, 10월 21, 2022
존 글렌 인터뷰 (2013년)
80년대에 007 영화를 여러 편 감독했고
[제3의 사나이]에서 크레딧에는 오르지 못 했으나 음향 편집 작업을 했던 존 글렌 인터뷰 중에서.
글렌은 [제3의 사나이] 때 아주 어린 음향 편집 조수였음. 안톤 카라스를 영국으로 데려왔는데 카라스가 영국 음악가 노조원이 아니라서 노조는 카라스가 스튜디오에서 작업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카라스는 킹스 로드에 있는 캐롤 리드의 집에서 작업을 해야 했음. 글렌이 필름을 캐롤의 집으로 가져가서 카라스가 작업할 수 있도록 필름을 돌리려고 함. 그런데 전원을 넣는 순간 집의 모든 조명이 나가 버림. 글렌이 두꺼비집의 퓨즈를 교체하고 다시 시작했는데 또 조명이 나가 버림. 글렌이 집사에게 못 하나 달라고 해서 퓨즈 대신 못을 끼우고 나서 작업 진행. 나중에 킹스 로드를 지나다가 글렌이 아내에게 "아직도 두꺼비집에 그 못이 있을지 궁금하네."
* 재미있는 얘기이긴 한데, 두꺼비집에 퓨즈가 아닌 다른 금속 끼우는 건 절대 하면 안 되는 일이라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지 않나??
가이 해밀턴 인터뷰 (2011년)
6,70년대 007 영화의 감독으로 유명하고 캐롤 리드의 대표작 3편의 조감독이었던 가이 해밀턴 인터뷰 (2011년).
트랜스크립트가 붙어 있어서 읽어 보았다. 그 중 캐롤 리드 위주로 일부분만 정리.
- [떨어진 우상]에서 캐롤 리드의 조감독이 됨. 함께 일하기 즐거웠는데 왜냐하면 캐롤이 아주 좋은 조감독이었던 사람이기 때문. 캐롤은 업계에서 해밀턴의 아버지 같은 존재가 됨.
[떨어진 우상]에서 등장 인물 하나가 관객이 좋아하면 안 되는데 너무 매력적이고 재미있어서 좋아하게 될 것 같아 우려가 됨. “테이크 다시 갈까요?”라고 했더니 캐롤이 “아니. 아직 계단 장면 안 찍었지. 강아지 한 마리 구해와.” 그래서 강아지를 데려왔더니 캐롤 왈 “자 이제 저 인물이 계단을 달려 올라가서 강아지를 걷어 차게 하는 거야. 그러면 관객들이 저 인간을 싫어할 거야.”
- [제3의 사나이] 조감독 시절: [제3의 사나이]를 찍을 때 아주 아름다운 장면을 찍었는데 캐롤이 이건 필요 없겠다고 함. “이건 영화 전체에서 제일 아름다운 장면인데요.” “나도 알지만 필요하지 않다고.” 가장 좋아하는 장면과 사랑에 빠져서는 안 되는 것임.
캐롤은 오슨 웰즈를 굉장히 원했음. 당시 웰즈의 흥행 성적이 안 좋아서, 셀즈닉은 웰즈와 일하느니 죽고 싶어했지만. 노엘 카워드가 물망에 오르기도 했음. 웰즈는 로마에 있었고 우리는 비엔나에서 촬영하고 있었고 옆 사무실에서는 런던이 웰즈의 계약을 협상하고 있었음. 웰즈는 출연료를 원한 게 아니라 여기저기 묶여 있는 필름들, 호텔 숙박료 등을 지불해 주길 원했음. 비엔나는 당시 군사 지역이었고 민간인은 전화를 쓰려면 새벽 4시부터 줄을 서야 했기 때문에 협상하기 아주 골치 아팠음.
하루는 해밀턴이 촬영장을 지나가다가 벽에 큰 그림자가 지게 됨. 캐롤이 “다시 와서 그림자 다시 만들어 보게.” “무슨 그림자요?” “이제 앞으로 뛸 수 있겠나? [...] 좋아, 좋아. 하지만 자넨 너무 말랐어. 큰 모자와 큰 코트를 가져와서 걸치게.” 그래서 웰즈를 기다리는 동안 해밀턴이 웰즈의 대역을 하게 됨.
고양이 장면도 웰즈 기다리다가 만들어 낸 장면.
- 캐롤 리드는 배우들을 다루는 데 뛰어났음. 특히 어린이들을 훌륭하게 다루었는데 어린이에 대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인내심이 있었음. 항상 배우들을 편하게 해줬음.
- [떨어진 우상]을 마무리할 무렵 스트레스 받던 캐롤 리드는 이 다음에는 코미디 스릴러를 해야겠다고 함. 그레이엄 그린과 아주 잘 지냈던 캐롤은 그린에게 액션이 좀 있는 스릴러 아이디어 있냐고 물어봄. 그린은 스트랜드 거리를 한 남자가 걸어가는데 건너편에서 자기가 참석했던 장례식의 주인공인 남자를 보게 되는 이야기의 아이디어가 있었음. 알렉산더 코르다에게 얘기했더니 스트랜드가 아니라 비엔나가 어떠냐고 함. 코르다가 비엔나에 묶인 자산이 있었기 때문. 그린이 비엔나에 가서 하수도, 대관람차, 페니실린 밀매망에 대해 찾아냄. 일정을 맞춘다고 낮 촬영팀, 밤 촬영팀, 하수도 촬영팀으로 나누기는 했는데 캐롤이 벤제드린 먹어가면서 세 팀 모두 감독함. 나중에는 누군가 캐롤에게 와서 스탭들에게 벤제드린 그만 먹이라고 함.
- 조감독 시절 테스트 촬영을 많이 했는데 기억에 남는 배우는 리처드 버튼, 스티븐 보이드, 다이언 실렌토.
- 캐롤이 해밀턴에게 이제 더 가르칠 것이 없다고 이젠 스스로 실수를 해봐야 한다고 함. 좋은 조감독이 부족하던 시절이라 코르다가 해밀턴을 놓아주지 않을 것 같았음. 캐롤이 해밀턴에게 말하길 아마 1년 연장 계약서가 올텐데 감독 데뷔 조건 아니면 서명하지 말라고 함. 나중에 코르다에게서 캐롤 앞으로 전보가 왔는데 “이 자식아. 네가 시켰지.” 라고 했고 이 때는 해밀턴이 조감독 자리를 벗어나지 못 함.
영화사 책임자였던 Arthur Jarrett(?)이 [제3의 사나이] 가편집본을 보고 캐롤에게 전보를 보냄: ‘정말 훌륭하지만 밴조 음악은 빼게.’ 캐롤이 전보를 던져 버렸는데 해밀턴이 주워서 보관함. 나중에 Jarrett이 해밀턴에게 자네는 아직 조감독을 해 줬으면 한다고 하자 해밀턴이 지터 음악 얘기를 꺼냈고 Jarrett이 [제3의 사나이]의 지터 음악이 정말 대단했고 그게 영화를 완성했다고 함. 그래서 해밀턴이 “원래는 그렇게 얘기 안 하셨잖아요.”라고 하자 Jarrett 왈 “자네 감독할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똑똑하구먼.” 그래서 감독 데뷔에 좀 진전이 있게 됨.
- 아직 배우는 단계인 감독에게 해 줄 수 있는 최고의 충고는 캐롤 리드가 해 준 충고임: “불확실할 때는 클로즈 샷을 찍어라.” 감독이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을 때 그 사실을 스탭들이 알지 못하게 해야 하고, 이 때 클로즈 샷을 찍으면 렌즈 교체하고 하면서 생각할 시간 5분을 벌 수 있다고.
- 해밀턴이 감독 데뷔할 때 캐롤이 편집자 Bert Bates를 쓰도록 해 줌.
- 007 영화 촬영 장소 물색하던 중 어딘지는 잊었으나 온통 거울이고 움직이지 않는 모든 것이 금색으로 칠해진 곳을 발견. 미술 담당인 켄 아담: “여기서는 촬영하면 안 돼.” 해밀턴: “왜 안 돼? 멋진데.” 아담: “끔찍한 취향이야.” 해밀턴: “바로 그게 요점인데.” 아담: “하지만 사람들이 내가 그걸 만들었다고 생각할 거 아니야!”
- 해밀턴이 좋아하는 일화라며 여담으로 얘기하는 프레드 진네만의 일화: 후기의 진네만이 새 작품 기획 단계에서 영화사에 불려감. 웬 애송이가 “프레드, 만나서 반가워요. 자 이제 당신이 만들었던 영화들에 대해 좀 얘기해 봐요.” 진네만: “아니, 자네가 먼저 얘기해 봐.” 그리고 진네만은 방에서 나와 버림.
- 해밀턴은 데이비드 린과 몇 번 일해 본 적이 있고 데이비드 린의 마지막 영화가 될 뻔 했다가 만들어지지 못한 영화의 예비 감독이 해밀턴이었다고.해밀턴에 의하면 린은 엄청나게 이기적이고 비현실적이며 자기가 누구의 돈을 쓰는지 신경 안 쓰는 사람이었다고.
- 영화를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첫 번째 운을 잡는 것이라고.오래 걸리는 일이고 그 과정에서 실망도 많이 하게 되지만 계속해 나가야 한다고. 인터뷰어가 '첫 번째 영화를 만들 기회를 잡기는 어렵지 않다. 어려운 건 두 번째 영화다'라는 말이 있다고 하자 캐롤 리드도 바로 그런 말을 했었다고 함.
* “And my first job was on a second unit in Dartmoor [moorland in south Devon, England] on a Trevor Heid [ph] picture”라는데 이건 [They Made Me a Fugitive] (1947) 얘기일 듯. Trevor Howard 주연인데 트랜스크립트가 좀 세심하질 못 하다.
* ‘Robert Maldy [may be referring to Robert Brown] and Trevor Howard’ 라는 대목이 나오는데 이건 [Outcast of the Islands] 얘기일 것이고 Robert Maldy가 아니라 Robert Morley여야 할 듯.
화요일, 6월 21, 2022
옛날 한국영화 속 프랑스 인형
'프랑스 인형'으로 검색해도 나오는 게 별로 없는데 , 서구에서는 Bradley doll이라고 불리는 것 같고 70년대에 우리나라에서 수출을 많이 한 모양이다.
https://m.bunjang.co.kr/products/170277687
https://shindonga.donga.com/3/all/13/2419252/1
https://twitter.com/studio_jork/status/1492164671444377604
아무튼 옛날 한국영화를 보는데 다방이건 양가댁 규수 방이건 총각 택시 운전사 방이건 가리지 않고 프랑스 인형이 등장하길래 모아보았다 (영화 제목 가나다 순). 사진들 중 출처를 달리 설명하지 않은 것은 유튜브 한국고전영화 채널 (https://www.youtube.com/c/KoreanFilm)에서 캡처했다.
검은 머리 (1964) 004202
골목안 풍경 (1962) 010738
그 여자의 일생 (1957) 001247
월요일, 6월 20, 2022
김수용 감독이 말하는 배우 최무룡
씨네 21, 228호 (1999.11.30), 14-15 페이지
추모 기획 / 최무룡(崔戊龍 1928 ~ 1999)
그리움에 젖은 눈동자여, 안녕히
김수용/ 영화감독
내가 최무룡을 처음 본 것은 1948년 가을, 그의 나이 스무살 때였다. 그 무렵 명동에 위치한 국립극장은 제1회 전국대학연극경연대회를 개최하고 있었으며, 중앙대학은 존 미리톤 싱의 [계곡의 그림자]를 참가작품으로 공연하고 있었다. 등장인물은 단 4사람. 깊은 산 계곡에서 은둔생활을 하는 노학자와 그의 부정한 젊은 아내, 그리고 양치는 목동과 길을 잃은 방랑자가 그들이다. 놀라지도 않고 차분하게 노학자의 넋두리를 듣는 방랑자가 바로 최무룡이었다. 그의 소리는 그리움에 가득 차 있었고 준수한 용모는 눈이 부셨다. 관객들은 순간적으로 신선한 학생배우의 등장에 넋을 잃었다. 나도 그때 같은 또래의 사내에게 혼을 빼앗기고 말았으니까.
그리고 얼마 동안 무대 위의 최무룡은 나의 머리 속을 차지하고 있었다. 다음해 봄이던가 중앙대학에서 [햄릿] 공연이 있었다. 나는 만사를 제쳐놓고 무대 앞자리에서 턱을 고이고 최무룡의 길고긴 그러나 유창하고 품위있는 셰익스피어 대사에 열중하고 있었다. 50년 한국전쟁이 터져 노도와 같은 전쟁의 먹구름이 한반도를 휩쓸고 지나갔고 나는 살아남아 군복을 입고 후방도시 대구거리를 걷고 있었다. 그날 저녁 극장골목길에서 연극을 마치고 나오는 한무더기의 배우를 만났는데, 그 틈에 최무룡을 발견하고 "아, 고마울시고 당신도 살아 있었구나!" 외치고 말았다. 나는 그후 그와 별로 교류가 없었는데도 친한 친구처럼 착각하고 살아갔다.
최무룡을 영화배우로서 내 카메라 앞에 처음 세운 것은 훨씬 뒤인 1964년 여름이다. 김영수의 희곡 [혈맥]을 영화로 만들게 됐을 때, 지성파 고학생을 찾다가 그의 얼굴을 떠올린 것이다. 그는 연극에서 영화로 옮겨오면서 짧은 시간 내에 스타의 자리를 향해 달리고 있었으며, 김진규와 대등한 인기를 누렸고, 신영균과 더불어 남자 주역 트리오를 이미 형성하고 있었다. [혈맥]은 나의 리얼리즘 계열의 첫 시도였는데, 최무룡이 많은 출연자 중에서 가장 빛난 것은 이때부터 개성있는 연기세계를 확립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연기를 대별하면 움직임과 정지상태가 될 것이며 대체로 배우들은 큰 동작으로 관객의 시선을 끌려고 한다. 그것은 연기의 내적 축적보다 외부 발산을 강조하기 때문에 심리적인 측면보다 형식적인 면이 강조될 때가 있다. 연기는 이 두 가지 요소가 완전히 조화를 이룰 때 성공할 수 있다. 최무룡과 함께 출연했던 당시의 배우 중 김승호 · 황정순 · 신영균 · 최남현 · 주선태 · 신성일 · 엄앵란은 형식면을 중요시했고 조미령 · 김지미 · 최무룡은 내적 연기에 충실했다. 물론 조용하고 침착하면서도 떠들썩한 대사에 의존하지 않고 몸 전체로 섬세한 감정표현을 해낼 수 있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최무룡의 연기에는 퍼스(호흡)가 적절하다. 대사를 줄줄이 외우지 않고 말과 말 사이에는 간격을 둔다. 요즘처럼 영화 전체가 뜀박질하다 끝나는 시대에는 좀 지루하게 느껴지겠지만 연기의 흐름은 반드시 속도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니고 필요적절한 사이가 절대로 필요하다. 최무룡은 40년 전에 벌써 연기 개안을 하고 감정의 흐름 속에 적절한 정지상태를 삽입해서 극의 진전에 긴장과 격조를 높이는 연기술을 독자적으로 개발했다. 이것은 연극무대를 밟은 배우가 노력 끝에 스스로 도착한 결론이지만, 크게 평가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몇년 전 영상자료원을 찾아간 나를 최무룡은 이사장실에서 반갑게 맞아주었다. 때마침 최민수의 영화가 크게 히트하고 있어 자연 우리의 화제가 그리로 옮겨졌다. "김 감독이 보기에 그 애 연기는 어때요?" "아직 멀었지." "칭찬해주고 싶지만 아버지 수준에 못 미쳤어요. 우선 젊은 배우치고 연기가 섬세하고 감정처리도 좋은 편인데 연기에 흐름만 있지 정지상태가 보이지 않아요. 즉 퍼스를 적절하게 구사한 아버지의 연기가 더 윗길이지요." 최무룡의 얼굴엔 우려와 안도가 동시에 퍼졌다. 최무룡이 민수가 태어났다는 기쁜 소식을 들은 것은 홍콩의 페닌슐라 호텔이다. 그때만 해도 해외전화의 감이 좋지 않아 소리소리 질러가며 딸을 셋 낳고 득남한 아버지는 어쩔 줄 몰라했다. "김 감독, 효실이가 아들을 낳았대잖아!" 우리는 "와!" 하고 환성을 질렀다. [혈맥]을 끝낸 후 한양영화사는 최초로 홍콩과의 합작영화 [화염산] (한국 상영 때는 [손오공]으로 제명이 바뀌었다)을 찍게 됐는데 제작부 간부가 진행비 5만달러를 가지고 증발했기 때문에 우리 일행은 홍콩에서 국제 고아가 되고 말았다. 남자배우는 김희갑 · 양훈 · 최무룡, 여배우는 김지미 · 이빈화* · 양미희, 여기다 감독을 합쳐 7명인 우리 일행은 비싼 호텔에서 외상으로 묵으며 서울에서 돈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우리의 우울한 한달이 지나고 어렵사리 현지 교민의 돈을 빌려 크랭크인을 하게 된 전날밤 최무룡네 아들 소식이 날아든 것이다. 그날밤 우리는 외상술을 마셨지만 아들을 낳은 아버지는 기분이 너무 떠서 카바레의 무대에 뛰어올라 마이크를 잡았다. 그때 홍콩사람들은 최무룡의 노래에 정신을 잃었다. 브라보! 브라보! 샴페인이 수없이 터졌다. 내가 한국 배우를 소개하면서 최무룡의 득남 소식을 전달했기 때문이다.
언젠가 윤정희에게 러브신 할 때 누가 제일 편안하게 해주느냐고 물었다. 그녀는 최무룡과 신성일을 꼽았다. "신성일씨는 자세를 맵시있게 유도해가며 여배우가 자연스럽게 연기할 수 있게 배려해주고, 최 선생은 심리적으로 다가오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뜨거운 감정으로 연기하게 된다"고 말했다. 최무룡은 그만큼 상대역의 연기를 이끌어내 연기에 앙상블을 만들어내는 재주를 가졌다. 영화평론가 호현찬씨는 "60년대부터 한국영화는 세 사람의 남자배우가 눈부신 활동으로 지탱해왔고, 신영균의 박진감 있는 분위기, 김진규의 포토제닉한 얼굴, 최무룡의 섬세하고 완벽한 연기가 특징이며 현재 여러 영상분야에서 활동하는 연기자들을 이 세 사람의 연기 카테고리로 정리할 수 있다"고 했다.
영화인협회장이 있던 날 아침, 비좁은 장소에 검은 옷의 영화인들이 발디딜 틈이 없었고 투명하고 그리움에 젖은 눈동자의 최무룡 영정에는 문화훈장이 번쩍이고 있었다. 최무룡은 운명하기 며칠 전까지 시골 무대를 돌아다녔다. 비록 그것이 옛날처럼 갈채를 받던 영광스런 품은 아니었어도, 무슨 상관이랴. 그는 끝까지 자기 힘으로 무대와 생활을 책임지고 살다가 떠난 사람이다.
* 이빈화 배우는 [화염산]에 출연하지 않았다. 조미령 배우를 잠시 혼동하신 것 같다.
[2]
한국영상자료원 기관지 아카이브 프리즘 #4 (2021.03.20), 260 페이지
... 최무룡 씨만큼 감정 처리가 정확하고, 그이는 참 연기의 산신령이에요. 그런 분이었어요. 난, 이 최무룡 씨가 아쉬워요. 굉장히 연기 잘하는 사람이에요.
토요일, 1월 01, 2022
KMDb 영화인 다큐 중에서 최무룡 캡처
이해윤 은막의 스타,그 날개를 달다
https://www.kmdb.or.kr/db/kor/detail/movie/A/03246
00:29:26
은막의 신사, 영화배우 윤일봉
https://www.kmdb.or.kr/db/kor/detail/movie/A/03435


영원한 모상의 배우 황정순 (1999)
www.kmdb.or.kr/db/kor/detail/movie/A/03170
00:10:14

아마도 [방의 불을 꺼주오] (1970)
00:22:07

아마도 [내 아들아] (1971)
시대를 앞서간 여성 시네아스트, 홍은원 (2003)
www.kmdb.or.kr/db/kor/detail/movie/A/03433
00:29:36
www.kmdb.or.kr/db/kor/detail/movie/A/03431
00:06:48
00:45:38
대중과 함께한 영화인생 장일호 (2000)
www.kmdb.or.kr/db/kor/detail/movie/A/03173
00:08:06
굴곡의 역사속에 꽃피운 영화열정, 영화배우 전택이 (2002)
www.kmdb.or.kr/db/kor/detail/movie/A/03430
00:43:17
00:31:39
00:35:58
영원한 보스 영화배우 장동휘 (1999)
www.kmdb.or.kr/db/kor/detail/movie/A/03167
00:14:20
카메라에 혼을 담다 영화인생 45년 이성춘 (2001)
www.kmdb.or.kr/db/kor/detail/movie/A/03248
00: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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