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일, 6월 21, 2022

옛날 한국영화 속 프랑스 인형

요즘은 볼 수 없지만 nn년 전에는 유리 상자 안에 들어 있는 '프랑스 인형'이라고 불리는 물건이 있었다. [베르사이유의 장미] 주인공이 입을 법한 풍성한 드레스를 입은 것도 있었지만 한복을 입은 것도 많았다.

'프랑스 인형'으로 검색해도 나오는 게 별로 없는데 , 서구에서는 Bradley doll이라고 불리는 것 같고 70년대에 우리나라에서 수출을 많이 한 모양이다.

https://m.bunjang.co.kr/products/170277687

https://shindonga.donga.com/3/all/13/2419252/1

https://twitter.com/studio_jork/status/1492164671444377604


아무튼 옛날 한국영화를 보는데 다방이건 양가댁 규수 방이건 총각 택시 운전사 방이건 가리지 않고 프랑스 인형이 등장하길래 모아보았다 (영화 제목 가나다 순). 사진들 중 출처를 달리 설명하지 않은 것은 유튜브 한국고전영화 채널 (https://www.youtube.com/c/KoreanFilm)에서 캡처했다.

검은 머리 (1964) 004202


검은 머리 (1964) 004319


검은 머리 (1964) 005816



골목안 풍경 (1962) 010738


골목안 풍경 (1962) 012546


그 여자의 일생 (1957) 001247


남성 대 여성 (1959) 001101


남성 대 여성 (1959) 001130

남성 대 여성 (1959) 002550

남성 대 여성 (1959) 002715

남성 대 여성 (1959) 002953

비오는 날의 오후3시 (1959) 001514

비오는 날의 오후3시 (1959) 003409

비오는 날의 오후3시 (1959) 004341

비오는 날의 오후3시 (1959) 005741

빗속에 떠날 사람 (1971) DSKT094103_01 : 출처 KMDb


이별의 부산정거장 (1961) : 출처 http://busan.grandculture.net/Contents?local=busan&dataType=01&contents_id=GC04210488


주차장 (1969) DSKT086970_01 : 출처 KMDb

표류도 (1960) 000328

표류도 (1960) 001757

표류도 (1960) 002156

표류도 (1960) 003935

표류도 (1960) 005047

표류도 (1960) 011724

표류도 (1960) 011835

해바라기 가족(1961) 000426

해바라기 가족(1961) 001112

해바라기 가족(1961) 011345

월요일, 6월 20, 2022

김수용 감독이 말하는 배우 최무룡

[1]
씨네 21, 228호 (1999.11.30), 14-15 페이지
추모 기획 / 최무룡(崔戊龍 1928 ~ 1999)
그리움에 젖은 눈동자여, 안녕히


김수용/ 영화감독

내가 최무룡을 처음 본 것은 1948년 가을, 그의 나이 스무살 때였다. 그 무렵 명동에 위치한 국립극장은 제1회 전국대학연극경연대회를 개최하고 있었으며, 중앙대학은 존 미리톤 싱의 [계곡의 그림자]를 참가작품으로 공연하고 있었다. 등장인물은 단 4사람. 깊은 산 계곡에서 은둔생활을 하는 노학자와 그의 부정한 젊은 아내, 그리고 양치는 목동과 길을 잃은 방랑자가 그들이다. 놀라지도 않고 차분하게 노학자의 넋두리를 듣는 방랑자가 바로 최무룡이었다. 그의 소리는 그리움에 가득 차 있었고 준수한 용모는 눈이 부셨다. 관객들은 순간적으로 신선한 학생배우의 등장에 넋을 잃었다. 나도 그때 같은 또래의 사내에게 혼을 빼앗기고 말았으니까.

그리고 얼마 동안 무대 위의 최무룡은 나의 머리 속을 차지하고 있었다. 다음해 봄이던가 중앙대학에서 [햄릿] 공연이 있었다. 나는 만사를 제쳐놓고 무대 앞자리에서 턱을 고이고 최무룡의 길고긴 그러나 유창하고 품위있는 셰익스피어 대사에 열중하고 있었다. 50년 한국전쟁이 터져 노도와 같은 전쟁의 먹구름이 한반도를 휩쓸고 지나갔고 나는 살아남아 군복을 입고 후방도시 대구거리를 걷고 있었다. 그날 저녁 극장골목길에서 연극을 마치고 나오는 한무더기의 배우를 만났는데, 그 틈에 최무룡을 발견하고 "아, 고마울시고 당신도 살아 있었구나!" 외치고 말았다. 나는 그후 그와 별로 교류가 없었는데도 친한 친구처럼 착각하고 살아갔다.

최무룡을 영화배우로서 내 카메라 앞에 처음 세운 것은 훨씬 뒤인 1964년 여름이다. 김영수의 희곡 [혈맥]을 영화로 만들게 됐을 때, 지성파 고학생을 찾다가 그의 얼굴을 떠올린 것이다. 그는 연극에서 영화로 옮겨오면서 짧은 시간 내에 스타의 자리를 향해 달리고 있었으며, 김진규와 대등한 인기를 누렸고, 신영균과 더불어 남자 주역 트리오를 이미 형성하고 있었다. [혈맥]은 나의 리얼리즘 계열의 첫 시도였는데, 최무룡이 많은 출연자 중에서 가장 빛난 것은 이때부터 개성있는 연기세계를 확립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연기를 대별하면 움직임과 정지상태가 될 것이며 대체로 배우들은 큰 동작으로 관객의 시선을 끌려고 한다. 그것은 연기의 내적 축적보다 외부 발산을 강조하기 때문에 심리적인 측면보다 형식적인 면이 강조될 때가 있다. 연기는 이 두 가지 요소가 완전히 조화를 이룰 때 성공할 수 있다. 최무룡과 함께 출연했던 당시의 배우 중 김승호 · 황정순 · 신영균 · 최남현 · 주선태 · 신성일 · 엄앵란은 형식면을 중요시했고 조미령 · 김지미 · 최무룡은 내적 연기에 충실했다. 물론 조용하고 침착하면서도 떠들썩한 대사에 의존하지 않고 몸 전체로 섬세한 감정표현을 해낼 수 있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최무룡의 연기에는 퍼스(호흡)가 적절하다. 대사를 줄줄이 외우지 않고 말과 말 사이에는 간격을 둔다. 요즘처럼 영화 전체가 뜀박질하다 끝나는 시대에는 좀 지루하게 느껴지겠지만 연기의 흐름은 반드시 속도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니고 필요적절한 사이가 절대로 필요하다. 최무룡은 40년 전에 벌써 연기 개안을 하고 감정의 흐름 속에 적절한 정지상태를 삽입해서 극의 진전에 긴장과 격조를 높이는 연기술을 독자적으로 개발했다. 이것은 연극무대를 밟은 배우가 노력 끝에 스스로 도착한 결론이지만, 크게 평가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몇년 전 영상자료원을 찾아간 나를 최무룡은 이사장실에서 반갑게 맞아주었다. 때마침 최민수의 영화가 크게 히트하고 있어 자연 우리의 화제가 그리로 옮겨졌다. "김 감독이 보기에 그 애 연기는 어때요?" "아직 멀었지." "칭찬해주고 싶지만 아버지 수준에 못 미쳤어요. 우선 젊은 배우치고 연기가 섬세하고 감정처리도 좋은 편인데 연기에 흐름만 있지 정지상태가 보이지 않아요. 즉 퍼스를 적절하게 구사한 아버지의 연기가 더 윗길이지요." 최무룡의 얼굴엔 우려와 안도가 동시에 퍼졌다. 최무룡이 민수가 태어났다는 기쁜 소식을 들은 것은 홍콩의 페닌슐라 호텔이다. 그때만 해도 해외전화의 감이 좋지 않아 소리소리 질러가며 딸을 셋 낳고 득남한 아버지는 어쩔 줄 몰라했다. "김 감독, 효실이가 아들을 낳았대잖아!" 우리는 "와!" 하고 환성을 질렀다. [혈맥]을 끝낸 후 한양영화사는 최초로 홍콩과의 합작영화 [화염산] (한국 상영 때는 [손오공]으로 제명이 바뀌었다)을 찍게 됐는데 제작부 간부가 진행비 5만달러를 가지고 증발했기 때문에 우리 일행은 홍콩에서 국제 고아가 되고 말았다. 남자배우는 김희갑 · 양훈 · 최무룡, 여배우는 김지미 · 이빈화* · 양미희, 여기다 감독을 합쳐 7명인 우리 일행은 비싼 호텔에서 외상으로 묵으며 서울에서 돈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우리의 우울한 한달이 지나고 어렵사리 현지 교민의 돈을 빌려 크랭크인을 하게 된 전날밤 최무룡네 아들 소식이 날아든 것이다. 그날밤 우리는 외상술을 마셨지만 아들을 낳은 아버지는 기분이 너무 떠서 카바레의 무대에 뛰어올라 마이크를 잡았다. 그때 홍콩사람들은 최무룡의 노래에 정신을 잃었다. 브라보! 브라보! 샴페인이 수없이 터졌다. 내가 한국 배우를 소개하면서 최무룡의 득남 소식을 전달했기 때문이다.

언젠가 윤정희에게 러브신 할 때 누가 제일 편안하게 해주느냐고 물었다. 그녀는 최무룡과 신성일을 꼽았다. "신성일씨는 자세를 맵시있게 유도해가며 여배우가 자연스럽게 연기할 수 있게 배려해주고, 최 선생은 심리적으로 다가오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뜨거운 감정으로 연기하게 된다"고 말했다. 최무룡은 그만큼 상대역의 연기를 이끌어내 연기에 앙상블을 만들어내는 재주를 가졌다. 영화평론가 호현찬씨는 "60년대부터 한국영화는 세 사람의 남자배우가 눈부신 활동으로 지탱해왔고, 신영균의 박진감 있는 분위기, 김진규의 포토제닉한 얼굴, 최무룡의 섬세하고 완벽한 연기가 특징이며 현재 여러 영상분야에서 활동하는 연기자들을 이 세 사람의 연기 카테고리로 정리할 수 있다"고 했다.

영화인협회장이 있던 날 아침, 비좁은 장소에 검은 옷의 영화인들이 발디딜 틈이 없었고 투명하고 그리움에 젖은 눈동자의 최무룡 영정에는 문화훈장이 번쩍이고 있었다. 최무룡은 운명하기 며칠 전까지 시골 무대를 돌아다녔다. 비록 그것이 옛날처럼 갈채를 받던 영광스런 품은 아니었어도, 무슨 상관이랴. 그는 끝까지 자기 힘으로 무대와 생활을 책임지고 살다가 떠난 사람이다.

* 이빈화 배우는 [화염산]에 출연하지 않았다. 조미령 배우를 잠시 혼동하신 것 같다.



[2]
한국영상자료원 기관지 아카이브 프리즘 #4 (2021.03.20), 260 페이지
... 최무룡 씨만큼 감정 처리가 정확하고, 그이는 참 연기의 산신령이에요. 그런 분이었어요. 난, 이 최무룡 씨가 아쉬워요. 굉장히 연기 잘하는 사람이에요.

토요일, 1월 01, 2022

KMDb 영화인 다큐 중에서 최무룡 캡처


* KMDb 영화인 다큐 리스트 페이지: https://www.kmdb.or.kr/vod/old/docu?menuIndex=113


이해윤 은막의 스타,그 날개를 달다
https://www.kmdb.or.kr/db/kor/detail/movie/A/03246
00:29:26


??


은막의 신사, 영화배우 윤일봉
https://www.kmdb.or.kr/db/kor/detail/movie/A/03435
00:05:32

아마도 [그림자사랑] (1958)

00:05:35



00:05:36



00:05:37



00:05:59



00:46:04



00:46:25




영화인 다큐 <유현목 편>
https://www.kmdb.or.kr/db/kor/detail/movie/A/03163

00:02:29

유전의 애수? 잃어버린 청춘?



영화감독 김기영 (1997)
www.kmdb.or.kr/db/kor/detail/movie/A/03162
00:40:40




영원한 모상의 배우 황정순 (1999)
www.kmdb.or.kr/db/kor/detail/movie/A/03170
00:10:14

아마도 [방의 불을 꺼주오] (1970)

00:22:07

아마도 [내 아들아] (1971)


시대를 앞서간 여성 시네아스트, 홍은원 (2003)
www.kmdb.or.kr/db/kor/detail/movie/A/03433
00:29:36

아마도 [조춘] (1959) 촬영 현장



멜로영화의 거장, 홍성기 감독 (2002)
www.kmdb.or.kr/db/kor/detail/movie/A/03431
00:06:48
??

00:45:38
아마도 미 육군 홍보 영화 (https://www.youtube.com/watch?v=UObF5r4J1ac) 촬영 현장



대중과 함께한 영화인생 장일호 (2000)
www.kmdb.or.kr/db/kor/detail/movie/A/03173
00:08:06


00:08:22
아마도 [원효대사] (1962) 촬영 현장

00:14:48
아마도 [원효대사] (1962) 촬영 현장

00:15:02
아마도 [원효대사] (1962) 촬영 현장


00:34:05
아마도 [선과 악] (1965) 촬영 현장



굴곡의 역사속에 꽃피운 영화열정, 영화배우 전택이 (2002)
www.kmdb.or.kr/db/kor/detail/movie/A/03430
00:43:17
??



60년대 한국영화의 중흥기를 이끈 영화감독 최훈 (2000)
https://www.kmdb.or.kr/db/kor/detail/movie/A/03176
00:20:11


00:27:31
아마도 [어느 여교사의 수기]


00:31:39


00:34:10
아마도 [장마루촌의 이발사]


00:35:58



아름다운 악녀 최지희 (2004)
www.kmdb.or.kr/db/kor/detail/movie/A/03466
00:43:55


[국경아닌 국경선] (1964) (01:14:30 부근)



영원한 보스 영화배우 장동휘 (1999)
www.kmdb.or.kr/db/kor/detail/movie/A/03167
00:14:20
[길은 멀어도] (1960) ?



카메라에 혼을 담다 영화인생 45년 이성춘 (2001)
www.kmdb.or.kr/db/kor/detail/movie/A/03248
00:13:48


00:23:00
1984년 제23회 대종상 공로상 수상자 이성춘 촬영감독과 시상자 최무룡

수요일, 3월 17, 2021

낙동강 칠백리 (1963)

www.kmdb.or.kr/db/kor/detail/movie/K/00918


- 감독: 이강천
- 각본: 곽일로
- 촬영: 이병삼
- 출연: 이예춘 (덕삼), 최무룡 (삼용/용호), 김지미 (채순), 김진규 (윤호), 최지희 (옥진), 최남현 (윤호 부), 김정옥 (윤호 모), 최성호 (김 비서) 외


[1]
최무룡 영화들을 보면서 트위터에 간단하게 감상을 남기곤 했지만 [낙동강 칠백리]는 숨은 보석을 발견한 기분이어서 좀 길게 글을 써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딜 봐도 언급이 너무 안 되는데, 그냥 묻히기에는 아까운 작품이었다. 이 영화는 2015년에 필름이 발굴된 뒤 2017년에 시네마테크 KOFA에서 한 번 상영된 적이 있을 뿐이고 영상도서관 VOD는 본 사람이 아무도 없었던 것 같다. 우리가 이 VOD를 본 최초의 관람객이라고 믿을만한 곡절이 좀 있었다.

이하 스포일러 있음. KMDb에 올라와 있는 줄거리가 비교적 정확하고 daum에 올라와 있는 줄거리는 완전히 엉터리다.

이 몇 달 동안 60년대 우리나라 멜로 영화를 많이 보고 있지만 의외로 별로 울지 않고 있는데 주인공의 사연이 딱하긴 하지만 주인공의 결정과 행동이 이해가 안 가서 짜증이 날 정도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극중 인물들이 먼저 울거나 관객을 울리겠다고 작정하고 들이대지 않음에도 주인공들에게 공감이 가서 자연스럽게 마음이 움직여 눈물을 흘렸다. 가령
- 채순이 물에 빠뜨린 윤호의 카메라를 건져내는 삼용 (이건 정말 실제로 봐야 안다…)
- 채순이 가출한 다음에 술에 취해서 "삼용아 우리 둘이 행복하게 살자"라고 잠꼬대하듯 말하는 덕삼
- 채순이 윤호와의 사이에 낳은 갓난아기를 업고 어쩔 수 없이 귀향한 밤에 채순을 위해 부산 나가서 살자고 덕삼에게 말하는 삼용과 옆방에서 듣고 있는 채순

어느 인물이 어느 순간에 어느 장소에 왜 있는지도 말이 되게 해놓았다는 점도 좋았다. 뻔하다면 뻔한 스토리지만 37분경까지는 진행이 스피디해서 지루하지 않고 재미있는데 그 다음 채순의 상경 고난기가 좀 지나치게 길다. 옥진을 연기하는 최지희 배우의 활약 덕분에 이 갑갑한 구간을 견딜 수 있었다. 사실 삼용-채순-윤호의 삼각관계보다도 채순-옥진 간의 동지애와 덕삼-삼용 부자간의 정이 더 재미있고 감동적이었다. 특히 덕삼-삼용의 관계가 좋았는데 삼용은 채순에게는 사랑하면서도 퉁명스럽게 굴지만 덕삼에게는 언제나 부드럽고 다정하다.

개봉 당시 잡지 기사 ([야담과 실화] 63년 10월호, http://blog.daum.net/lipstips/18117576)를 보면 사춘기에 접어든 채순이 삼용을 남자로 대한다고 기술하고 있는데 실제 영화에서 초반에 채순과 삼용의 심리는 그보다는 좀 미묘하다고 생각한다. 남매처럼 자랐지만 두 사람은 피 한방울 섞이지 않은 관계이고 그걸 피차 알고 있고 동네 사람들도 다들 당연히 둘이 결혼할 거라고 생각하는데, 둘은 이성으로서의 사랑과 남매로서의 우애가 아직 혼란스럽게 섞여 있고, 표현도 서툴렀다. 시간이 좀 더 있었다면 결국 이성간의 사랑으로 예쁘게 맺어졌겠지. 마을 남정네들은 아무도 감히 채순에게 수작부릴 생각도 못하는데 서울에서 온 윤호는 동네 분위기를 모르고 어려움 없이 성급하게 채순과 관계를 맺고 만다. 서울에서 온 남자라는 게 여러 가지로 작동한 셈인데 그 시절 시골 처녀의 서울에 대한 동경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것이었고, 채순이 어린 시절 삼용에게 서울 얘기해달라고 조르는 장면이나 친구 옥순의 서울행을 부러워하는 장면에서 밑밥은 충분히 깔아두었다고 본다.

최무룡 팬으로써 이 영화가 또 하나 매력적인 점은, 도시의 인텔리 역할을 주로 하던 그가 여기서는 순박한 시골 청년 역을 연기한다. 그리고 지금까지 본 최무룡 영화에서 최무룡이 연기하는 캐릭터는 정신 좀 차리라고 외치고 싶은 경우가 많았는데 이 영화의 삼용/용호는 많이 불쌍하고 가슴 아프다.

최무룡은 신체 노출을 별로 하지 않은 편이라고 생각하는데 이 영화는 꽤 노출이 있다. 딱히 베드 씬이 있다거나 하는 건 아니고, 뱃사공인데 항상 셔츠 단추가 풀려있고 물에 빠진 카메라 건지려고 강물에 들어가는 장면에서 거의 다 벗는다. 뭐 이건 농담이고 진지하게 말해보자면 이 카메라 건지는 대목은 삼용-채순이 가장 애틋한 감정을 보여주고, 러브 씬이라고 부를 수도 있겠다. 이어지는 사건 전개를 생각하면 안타깝기도 하고. 저 때 화면이 너무 어둡고 화질이 안 좋아서 최무룡 표정을 제대로 볼 수 없는게 아쉬웠다. 삼용이 채순을 얼마나 사랑하고 그녀에게 헌신적인지 이런 식으로 표현되는 게 좋았다. 삼용은 채순을 너무 아끼고 소중히 여겨서 손목 한 번 잡아본 적이 없다. 마지막에 채순 시신을 물에서 건질 때에야 처음 안아 본 것 같다.

그리고 이예춘 배우 얘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악역으로 명성을 떨친 분이지만 가끔 이런 선량한 역도 하셨고 이 영화에서 참 좋았다. https://www.interview365.com/news/articleView.html?idxno=1594 에서는 이예춘이 삼백여편의 출연작 가운데 단 두 편 [나그네 설움]과 [푸른 하늘 은하수]에서만 악역을 맡지 않았다고 기술하고 있는데 아닙니다… [낙동강 칠백리] 도 포함시켜야 하니까 최소 세 편이다. 오프닝 크레딧 맨 앞부분이 사라졌고 아마 원래 크레딧은 김지미 - 김진규 - 최무룡 - 이예춘 순서인 거 같은데 이예춘 - 최무룡 - 김지미 - 김진규 순서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싶다. 얄팍한 악당 김비서나 다소 불만스러운 결말같이 이런저런 아쉬움도 있지만 결국 이 영화가 우리에게 보석 같은 작품으로 다가온 것은 덕삼-삼용-채순 사이의 감정이 생생하고 애달프게 다가왔기 때문이고 그 중심에는 이예춘 배우가 있었다.

[2]
옥진이 딸을 잃을 때쯤해서 필름이 좀 유실된 것 같았기 때문에 심의대본을 봤다. 옆집 여자가 옥진 딸의 사고를 알리러 온 부분, 삼용이 서울에서 옥순 아버지와 마주쳐서 덕삼이 형편이 말이 아니라는 말을 듣고 결국 구포로 내려가는 부분이 유실된 것 같다. 그리고 덕삼이 어린 삼용을 데리고 부모 찾아주러 부산 공장 갔다가 허탕치는 대목도 뒷 부분이 조금 유실된 것 같다.

물에 빠진 카메라 건지는 장면이 실제 영화에서는 애틋해서 기억에 남았는데 시나리오 상에서는 의외로 밋밋했다. 채순이 귀향한 날 밤 삼용이 덕삼에게 부산 나가서 살자고 하는 장면도 시나리오보다 실제 영화가 더 좋았다.

채순이 찾으러 서울 가기 직전 삼용의 독백은 시나리오에는 없었고, 그 밖에는 영화와 거의 같은데 시나리오에만 있고 영화에서는 빠진 부분이 좀 있다.
- 초반에 덕삼이 면서기의 눈길을 피하는 대목 직전에 술집에서 술 마시는 장면이 있다.
- 채순과 삼용의 어린 시절 장면이 더 있다. 삼용이 학교에서 우등상을 타서 식구들 모두 즐거워하고 이웃들도 덕삼에게 좋은 사윗감 두었다고 부러워한다.
- 채순이 상경한 직후 윤호와 어머니가 전쟁 중에 잃어버린 동생/아들 용호에 대해 얘기하는 대목이 있다. 이건 원래 필름에는 들어있는데 현재 남아있는 판본에서 유실된 것일 가능성이 높다. 윤호/용호 형제의 어머니 역을 맡은 김정옥 배우가 63년 동아방송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했는데 http://dbs.donga.com/comm/view.php?r_id=04204&r_serial=02
이걸 보면 원래는 "내가 어떻게 그말을 안하게 됐니? 난리통이라곤 하지만 네 동생 용호를 잊어버린게 일생의 한이고 가슴에 박힌 못인데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너희 아버질 뵐 낯이 없다." 란 대사가 있었다는 걸 알 수 있다. 사실 저 정도 대사는 있어야 할 것 같다. 현재 볼 수 있는 판본으로는 용호 부모가 잃어버린 아들에 대해 너무 관심이 없어보이기 때문이다.
- 서울 방직 공장으로 윤호를 찾아갔다가 허탕친 삼용이 생부와 아주 짧게 스치는 장면이 있다.
- 채순이 귀향한 뒤 윤호 부모의 대화가 조금 더 길게 나온다.
- 아기를 데리고 귀향한 채순과 마주쳤을 때 지문이 마음 아프다: "노하는 덕삼 체념하는 삼용"


[3]
1:07:10 경에 최무룡이 담배 피우는 장면이 나오는데 아무리 우리가 최무룡 + 담배 조합을 좋아해도 이건 좀 뜬금이 없었다. 저 시대 제작진 중에도 우리만큼이나 최무룡 + 담배 조합을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던 것인가. 심의대본에도 담배 피우는 걸로 되어 있긴 하다.

저 때는 많은 영화가 감초 조연으로 김희갑/구봉서/양훈/양석천을 투입했던 것 같고 이 영화도 그 중의 한편이다. 1:14:00 경에 하나마나 한 소리만 하는 점쟁이 김희갑과 최무룡이 이야기를 나누는데 별로 필요한 장면은 아니지만 최무룡이 매우 예쁘게 나온다.

삼용이 가출한 채순을 쫓아가느라고 옥순 아버지 배를 낚아채는 장면에서 우리가 사랑하는 최무룡 특유의 민첩함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4]
현재 볼 수 있는 유일한 판본은 화질이 좋지 않고 그나마 영상도서관에 가야만 볼 수 있다. 저 화질로라도 KMDb VOD로 집에서 볼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저희가 다시 보고 싶어서 그래요….